수퍼 화요일 민주당 경선 압승 힐러리, 퍼스트레이디 넘어 '퍼스트 퀸'눈앞

2016 美 대선 '첫 여성 대통령의 꿈'

대학졸업 때부터 야망, 남편 대통령 재선까지 '킹메이커'
2008년 첫 출마 고배…갖가지 난관 딛고 '대세론' 말뚝

 
 '수퍼 화요일'의 민주당 승자는 경선 초반 돌풍을 일으킨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가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감으로 거론돼온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조선일보는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해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던 힐러리는 이날 압승을 거두며 오랜 염원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보도했다.

▶'영부인'보단'정치인 힐러리'
 매체에 따르면 힐러리가 정치의 뜻을 처음 내비친 것은 1969년 웰즐리대학 졸업식 때였다. 졸업생 대표로 연단에 선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우리 지도자들은 정치를 '실현 가능한 것을 운영하는 기술'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창조하는 정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도수 높은 안경에 촌스러운 머리 모양을 한 이 여학생의 발언은 '라이프' 등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결혼은 힐러리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시키는 징검다리가 됐다. 학창 시절부터 힐러리는 지인들에게 빌을 "장래 대통령이 될 남자"라고 소개하며 남편이 정계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게 도왔다. 빌이 아칸소 주지사였던 시절, 남편을 부추겨 왕을 살해하게 한 맥베스 부인을 빗대 '리틀록(아칸소의 주도)의 맥베스 부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힐러리의 정치적 야심은 두드러졌다.

 1999년 2월 르윈스키 스캔들로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투표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힐러리는 뉴욕주 연방 상원 의원에 도전장을 내밀어 남편이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2000년 선출되면서'정치인 힐러리'로 거듭났다. 상원 의원이 되자 그녀는 비로소 행복해했다. 더 이상 남편의 그늘에 가려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후보 지명 따논 당상"
 2008년 첫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경선 결과 '다크호스'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밀려 잠시 꿈을 접었다. 하지만 오바마 재임 1기 국무장관을 맡은 뒤 2013년 물러날 때까지 힐러리는 여전히 '유력 대선 후보'로 여겨졌다. 결국 작년 4월 2분 18초짜리 짤막한 동영상을 통해 마침내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이번에도 난관이 많았다.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로 국가 기밀 서류를 주고받았다는 '이메일 스캔들'이 경선 초반 힐러리의 발목을 잡았고, 이후엔 샌더스 의원의 인기 고공 행진이 '힐러리 대세론'을 위협했다. 그러나 '수퍼 화요일'에서 압승을 거두며 힐러리의 민주당 후보 지명은 그야말로 따논 당상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1일 "힐러리의 시간이 왔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