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회 취재 외신들, 평양 민낯 보도…통제하는 모습만 부각돼
군중대회도 기묘한 풍경…"평양 시민들 진짜로 황홀해 보여"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한미희 기자 = 36년 만에 열린 북한 노동당 7차 대회에 초청받았지만 보도 통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외신들이 폐막 후 평양의 민낯을 전하면서 북한의 선전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

평양에 초청된 외국 기자들은 당 대회처럼 정작 필요한 취재 대상을 철저히 통제한 가운데 당국이 원하는 평양의 모습만 보여주려는 답답한 취재 환경에 대한 비판을 방북 기간 내내 내놓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김정은 당 위원장을 '불경하게' 보도했다는 이유로 BBC 기자가 추방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당대회 취재에 초청된 130여명의 기자들에게 공포와 좌절감을 더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당대회 현장에는 30여명의 기자만 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신혼부부의 결혼 축하연이 열리는 사격장으로 갔다"며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는 '아름답지 않은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현장에 참석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ABC 뉴스 테리 모런 기자는 '평양의 5일'이라는 기사에서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더 길게 느껴졌다"며 "우리를 따라다닌 두 명의 감시원은 '항상 존재하는 예의 바른' 주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던 공장의 모습은 진열장과 같았다며 견직 공장 견학 때 벽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의 거대한 초상화를 보면서 최면에 걸린 듯했다고 전했다.

모런 기자는 이런 숭배가 기묘했지만 북한 주민들, 적어도 북한 당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고 김일성, 김정일의 신체 일부가 드러나는 사진을 찍으면 삭제 요구를 받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평양을 떠나는 날 새벽 호텔 창문을 열었을 때 텅 빈 거리에서 북한 정권의 시끄러운 홍보 음악만이 정적을 깨뜨렸다며 평양 시내의 아침 모습을 전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퍼블릭 라디오 인터내셔널'은 "북한이 외신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실상을 공개하는) 도박을 하지는 못했다"고 비꼬면서 보도 통제를 비판했다.

인민문화궁전 취재를 갔다가 허탕만 쳤던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북한 관리들이 '멸균 처리된 현실'만 보여 주려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지적했고, LA타임스 아시아 특파원은 바바라 데믹은 "모든 게 무대 위에 있는 '트루먼 쇼'의 완결판"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CNN은 북한 언론이 완벽하게 국가 소유로 통제되고 있으며 정권 비판 내용은 한 줄도 쓸 수 없고 기사의 대부분은 정권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김정은 당 위원장 취임이 발표된 9일 당대회장 입장을 허가받은 일부 외신에 포함됐던 CNN은 이번 취재에 대해 '북한 기준에서 봐도' 매우 이상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엄격한 몸수색과 휴대품 압수 등에 걸린 수색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지만, 촬영을 허가받은 시간은 단 10분이었다며 경호원들은 참석자들의 노트북을 클로즈업하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찍어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이 10번째 북한 취재였다는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데서 보여 준 것처럼, "북한 정부가 조만간 무너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전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추방된 BBC 기자가 보도했던 내용이 많은 언론이나 북한 전문가가 늘 언급했던 것과 다른 것도 아니었다고 평가하면서 그런 보도와 관련해 북한을 옹호하는 것은 '비주류'일 뿐이라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추방됐던 BBC 윙필드-헤이스 기자의 공격적인 취재 때문에 대본과 다른 코멘트를 하는 북한 주민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소개하면서 "모든 언론이 고민하는 문제"라고 전제한 뒤 북한이 그은 경계를 넘어서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파이필드 기자의 말을 소개했다.

평양 명소 견학만 해야 했던 외신 기자 일부는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서 고려항공 편을 이용해 중국 베이징으로 떠났다.

10일 오전 북한 당 대회 폐막 기념을 위해 열린 평양 군중대회 모습도 외국 기자들의 눈에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BBC는 사람들이 광장에서 행진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오르는' 모습이었고 진심으로 황홀해 보였다고 전했다.

기자가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추대에 기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BBC는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억압받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탈북자들의 수많은 증언과 의미 있는 선거의 부재가 이를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CNN의 리플리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열광하는 평양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정은을 축하하려는 퍼레이드를 위해 도시(평양) 사람들 '절반'이 나타났다"고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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