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보도 [가업을 잇는다]

최장수 한인 에스크로 업체 '한미에스크로' 조익현·톰 조 父子
1983년 회사 설립 아버지 도우려 91년 합류한 아들
변호사일 병행하면서 이젠 '사장' …"후회없는 선택"

1세 父의 '꼼꼼함'과 2세 子의 '자신감'이 성공 비결
"가치관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같은 방향 바라봤다"

35년간 한 곳을 바라보며 우직하게 뚜벅뚜벅 한길만을 걸어왔다. 긴 세월 이런저런 부침에도 흔들림없이 걸어왔던 그 길 위엔 듬직한 '동행인'도 함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이 이 여정에 함께 하니 아버지는 든든하기만 하다.

바로 한인 에스크로 업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미에스크로' 조익현(82) 회장의 이야기다. 1983년 올림픽길에 회사를 설립했으니 올해로 꼭 35주년이다. 1991년부터 부친의 일을 돕다 본격적으로 에스크로 업계에 승선해 이제는 사장으로서 회사를 이끌고 있는 맏아들 톰 조(56·한글명 조계문) 사장도 아버지와 한길을 걸은 지 어느덧 27년째다.

▶한결같이 올곧은 아버지

"에스크로는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경기가 좋으면 에스크로도 호황이고, 그렇지 않으면 같이 힘들어진다. 1990년대 초와 지난 2008년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아들이 함께 해줘 힘이 되고 든든했다. 든든한 지원군인 아들이 있어 잘 헤쳐 나올 수도 있었다"고 아버지 조 회장은 회고한다.

아들 조 사장은 늘 '한결같이 올곧은' 모습의 아버지를 보며 인생의 나침반을 설정할 수 있어 그 세월이 더할나위 없었다고 말한다.

"법대를 파트타임으로 다니면서 아버지 회사 일을 돕다가 대학 졸업 때 쯤 불경기가 회복되고 일이 많아지는 바람에 자연스레 아버지를 계속 돕게 됐어요. 아버지가 걸어온 길에 들어선 것에 후회는 없었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레 에스크로 일에 관심도 생겼고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일에 도움도 되기도 했어요. 한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자산을 사고 파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지금은 가업을 잇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1935년생으로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조 회장은 성균관대 영문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주한 미군사령부에서 20년 간 안전관리원으로 근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부 초청 '특수이민'자격을 부여받고 1976년 미국으로 이민와 자리를 잡게 됐다. 뉴욕대에서 안전관리학을 연수했고, 웨스트 LA칼리지에서 에스크로학을 수료한 학구파이기도 한 조 회장은 지난 2011년 총 467페이지짜리 '미국 부동산 에스크로 총론'을 직접 펴내기도 했다.

▶성실함 물려받은 아들

한인 에스크로 업계의 '대부'로까지 불리며 조 회장이 이처럼 오랜기간 흔들리지 않고 에스크로 한길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꼼꼼함과 곧은 성격'이 한몫했다. 조 회장은 "에스크로는 신용이 제일 중요해 정직하고 꼼꼼해야 한다"며 "바이어와 셀러의 중간 입장에서 편견을 갖지 않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크로는 부동산이나 사업체 매매 과정에서 셀러와 바이어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하자가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방지하는 일을 대행한다. 에스크로 과정에서는 고객의 재산을 다루기 때문에 정직과 정확, 공정한 판단, 거기에 성실함까지 요구된다고 조 회장은 강조했다.

아들 조 사장은 변호사 출신이다. UCLA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사우스웨스턴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의 꿈도 키웠었다. 91년에 합류해 부사장으로 아버지를 돕다가 2007년 CEO로 직책을 바꾸고 회사의 대외적인 업무와 운영을 총괄해오고 있다.

아들 조 사장은 "30여년 가까이 아버지와 함께 해오면서 아버지의 원리원칙에 충실한 정확한 일처리, 그리고 추진력을 배웠다"며 "1세와 2세의 가치관이 다소 다르지만 아버지는 본인의 스타일을 고집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아들을 존중하고 스스로 부딪혀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주셨던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욕심을 버려라" 좌우명

한미에스크로는 현재 한인과 타인종 고객 비율이 5대5 정도로, 상당수 업체들이 한인시장만을 대상으로 해 비롯된 과당 경쟁 구조에서도 한발 빗겨나 있다. 이같은 고객 비율의 균형은 아들 조 사장의 다양한 경력과 1세보다 넓은 행동반경에서 기인한다.

조 회장은 LA한인상공회의소 18대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도 이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LA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고문직도 맡고 있을만큼 커뮤니티 활동에도 열심이다. 조 회장은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하고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사업 목표와 방향을 묻는 질문에 아들 조 사장은 "아버지로부터 성실함과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다"며 "저 역시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그동안 한미가 쌓은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이 목표다"고 밝혔다. 덧붙여 아버지가 한인사회에 봉사하듯 어려운 이웃을 위한 꾸준한 사회환원 활동도 약속했다.
조 회장은 지금도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반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해 아내가 손수 싸준 떡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런 아버지의 성실함은 아들인 조 사장에게도 되물림됐다. 한미에스크로의 미래가 밝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