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목줄죄고 꿈쩍않는 '총기협회'

[뉴스분석]

잇딴 총기 참사 불구 총기 규제'대답없는 메아리'
148년 역사, 부시 등 회원 550만여명 막강 로비력
연간 4억달러 굴리며 의원들 6개 등급 나눠 관리
"트럼프 당선 등 각종 선거서 상상이상의 역할"

미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이틀 사이 두 건의 총격 사건으로 31명이 숨지자 총기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연간 총기 사고로 숨지는 사람은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보다 훨씬 많은 4만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의회가 곧바로 강력한 총기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 때문이다.

도대체 NRA는 어떤 단체이고, 어느 정도 위력을 갖고 있길래 미국의 정치인들은 숱한 비난 여론에도 총기 규제를 강화하지 못하고 있을까.

NRA는 1871년 설립됐다. 148년이나 된 단체다. 당초 남북전쟁 당시 취약한 북군의 사격 솜씨를 본 군 간부들이 설립한 이 단체의 현재 회원은 약 550만명으로 추산된다. 회원은 전·현직 대통령과 관료, 의원, 법조인 등 다양하다.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회원으로 활동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 척 노리스도 회원이다. 영화 '벤허'에 출연했던 배우 찰턴 헤스턴은 1998년부터 10년 넘게 NRA 회장을 지냈다. 그는 "내 손에서 총을 가져가려면 죽인 뒤 빼앗아 가라"는 말을 남겼다.

1인당 45달러인 연회비 수입에다 총기 업체들이 수백만달러씩 내는 기부금 덕에 NRA의 자금 규모는 엄청나다. 인터넷 정치 전문 매체 워싱턴프리비컨에 따르면 NRA는 작년 1년 동안 4억1223만달러(약 5008억원)를 거둬들였다. 이 중 2억~3억달러를 대관 및 로비, 홍보 자금으로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NRA는 산하기관인 정치적승리재단(NRA-PVF)을 통해 주의회, 연방 상·하원 등 거의 모든 선거에서 후보자와 현직 공직자에 대한 등급을 매긴다. 크게 A, AQ, B, C, D, F 등 6개 등급이 있다.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민주당 정치인들은 대개 최하 등급인 F에 속해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대표적인 F등급 인사다. 공화당 의원들은 총기 규제에 대한 입장과 실제 법안 투표 여부 등에 따라 등급에 차이가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하원 의원 시절 A에 속했고,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폴 라이언 전 하원 의장 역시 A등급이다. 작년에 별세한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은 B등급이다.

NRA는 자신들의 등급에 따라 우호적인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몰아준다. 시민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NRA는 지난해 정치자금 기부로만 71만1654달러를 썼다. 마르샤 블랙번 전 하원 의원이 1만5800달러,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 등 17명이 9900달러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하원 의원 7명은 13달러씩을 받았다.

NRA 회원들이 극성이라 불릴 만큼 정치에 열의가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시사 잡지 더위크에 따르면 총기 소지 자유주의자들은 총기 규제 지지자에 비해 정치인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기부를 하는 성향이 4배나 된다.

존 아퀼리노 전 NRA 대변인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NRA의 힘은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나온다"면서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이겼을 때도 NRA의 역할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NRA는 이 경합 지역들에서 온라인 배너 등 디지털 홍보에만 3000만달러를 쓰는 등 총 7000만달러가량을 쓴 것으로 가디언은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