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여명 사상자 가운데 예비신부 응급 요원도 희생돼

장례식에서 웨딩밴드 축가 연주로 예비신부 넋 위로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지난 4일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참사에서 희생된 한 예비 신부의 죽음이 현지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안타까운 사연으로 회자하고 있다.

6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비운의 주인공은 24세 여성 사하르 파레스다.

그녀는 베이루트 소방대의 응급요원으로 내년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파레스는 지난 4일 밤 동료 소방대원들과 베이루트 항구에 있는 한 창고의 화재 현장에 출동했었다.

출동 당시까지만 해도 환자가 발생하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파레스는 소방차에 탄 채로 화상 전화로 약혼남인 길버트 카렌(29)에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불길은 더욱 격렬해졌고,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섬뜩한 폭발음까지 나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카렌은 파레스에 즉각 피신할 것을 요청했다.

카렌이 화상통화를 통해 지켜본 마지막 장면은 어디론가 안전한 곳을 향해 내딛던 파레스의 신발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고 파레스는 목숨을 잃었다.

레바논 당국은 항구 창고에 보관된 인화성 물질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대폭발로 157명이 사망하고 5천여명이 부상했다.

이틀 뒤인 열린 파레스의 장례식에서는 역설적으로 결혼식 축가가 울려 퍼졌다. 결혼의 꿈을 이루지 못한 파레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료 소방관들이 그녀가 안치된 흰색 관을 영구차에 싣는 동안 웨딩밴드가 경쾌한 결혼식 음악을 연주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녀의 관을 향해 쌀과 꽃가루를 뿌렸다.

누군가의 어깨에 목말을 탄 약혼남 카렌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동작과 함께 파레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카렌은 장례식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올린 추모글을 통해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당신을 제외한 당신이 원했던 모든 것이 준비될 것"이라면서 "당신이 가버렸으니 인생도 멋이 없다. 비통하다"고 적었다.

카렌은 또 "나의 사랑하는 신부. 우리의 결혼식은 내년 6월 6일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내일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파레스의 죽음에 대해 "전도유망한 삶은 짧았고, 레바논인들의 고통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