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은닉 1심 유죄 받은 김경록, 정경심 재판서 증언

"기자로부터 한동훈이 나를 주의 깊게 본다는 말 들어"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박형빈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하드디스크(HDD) 등 증거를 숨겨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김경록(38)씨가 정 교수의 요청을 받고 범행했다고 증언했다.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20일 정 교수에 대한 공판에 김씨를 검찰 측 증인으로 불러 심문했다.

◇ "정경심, 압수수색 대비한다며 하드디스크 교체해달라고 해"

김씨는 검찰 조사 당시 "정 교수가 '압수수색에 대비해 교체하려 한다'며 하드디스크를 교체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날 증인 신문에서 김씨에게 "검찰 조사에서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고, 김씨는 "사실대로 진술했다"고 답했다.

아울러 김씨는 지난해 8월 28일 조 전 장관 자택에서 정 교수가 자신에게 "검찰에 배신당했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가 "압수수색이 들어올 수 있어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야 한다"며 컴퓨터를 분해할 수 있는지 김씨에게 물었고, 이에 김씨가 "해본 적은 없지만 하면 된다"며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당시 정 교수로부터 "남부터미널 근처에 전자상가가 있으니까 하드디스크를 사 오라"는 말을 듣고 정 교수의 카드를 받아 전자상가에서 하드디스크를 구매해 교체했다고 한다.

이날 김씨의 증언 대부분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진술한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진술 내용은 앞서 김씨에 대한 1심 공판에서도 공개된 바 있다.

◇ 정경심, 증거은닉 공범인가 교사범인가

검찰은 정 교수가 증거인멸의 공범이 아닌 교사범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이 같은 김씨의 진술을 재차 법정에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에게 적용한 혐의는 증거은닉 교사다. 자신의 형사사건 증거를 은닉한 것은 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지만, 타인이 증거를 은닉하도록 한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이에 정 교수 측 변호인은 정 교수가 김씨에게 증거 은닉을 교사한 교사범이 아닌 공동으로 증거를 은닉한 공범에 해당해 죄가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김씨는 1심에서 증거은닉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1심 재판부는 정 교수와 김씨의 공범 관계를 판단하지 않았다.

한편 김씨는 이날 재판에서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려던 중 귀가한 조 전 장관에게서 "아내를 도와줘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재차 증언했다.

김씨는 또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저장 장치의 일종인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교체하도록 자신이 인터넷으로 SSD를 주문해줬으며, 교체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조 전 장관 아들이 "남들이 보면 부끄러운 것이 있어서"라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 김경록 "한동훈이 나를 주의 깊게 본다는 말 들어"

이어진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김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느낀 중압감을 토로했다.

김씨는 정 교수 하드디스크를 검찰에 임의제출한 경위에 대해 "정 교수가 (지난해) 9월 기소되고, 오래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서 '한동훈(검사장)이 너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조국(전 장관)은 이미 나쁜 놈이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드디스크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검찰 조사 중 면담 과정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가면 우리는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진술을 회유했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자신이 검찰에서 첫 참고인 조사를 받던 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부부장 검사가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긴급체포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검사들이 어떤 것들을 확보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 모든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등이 문서화됐다"며 "(검찰에서) 조 전 장관, 정 교수와의 10년 동안의 행위를 모두 소명하라는 말을 듣고 이런 식의 수사가 맞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