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들 "3채널 쓰는데 녹화 안 된 건 이례적"

이 차관 당시 임의동행 불응…영장 없으면 거부 가능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경찰이 봐줬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택시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다는 경찰 설명을 놓고서도 의문이 커지고 있다.

22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6일 밤 '승객을 깨우려다 멱살을 잡혔다'는 택시 기사의 신고를 접수한 직후 택시 기사와 함께 인근 서초파출소로 이동해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당시 녹화된 영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블랙박스에는 영상이 저장되는 SD카드가 들어 있기는 했지만 사건 상황이 담기지는 않았다.

이후 택시 기사는 사건 발생 사흘 뒤인 11월 9일 서초경찰서에 출석해 다시 블랙박스와 SD카드를 제출했다. 경찰은 이를 거듭 조사했지만, 이때도 영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도 경찰 조사에서 영상이 녹화돼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건은 택시 내부에서 발생해 사건 현장 인근의 CCTV에는 차 안의 모습까지는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박스 영상은 사건 당시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증거였던 셈이다.

결국 경찰은 명확한 영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에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을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택시 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택시가 운전 중이 아니라 정차 중이었고, 자는 승객을 깨우려다 보니 멱살을 잡혔지만 다치지는 않아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운전 중인 자동차 운전자 폭행을 무겁게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아닌, 반의사불벌죄인 일반 폭행 혐의를 적용해 이 차관을 사건을 같은 달 12일 내사 종결했다.

택시 기사들은 피해 택시의 블랙박스가 사건 당시 녹화되지 않은 게 흔한 일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택시는 대부분 교통사고나 승객과의 요금 시비 등의 돌발상황에 대비해 블랙박스를 상시 녹화 모드로 설정하고 주행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0년째 개인택시를 모는 유모(59)씨는 "요즘 택시는 대개 차량 전면·후면·내부가 동시에 녹화·녹음되는 3채널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운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3년 이상 블랙박스를 쓰다 보면 부품 고장 등으로 잠시 녹화가 되지 않는 일이 있는데, 일부 기기 조작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이를 모른 채 운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고 했다.

이 차관은 사건 당일 경찰의 임의동행을 요구받았으나 불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경찰은 이미 행해진 범죄나 행해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인근 경찰서나 지구대로 동행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를 요구받은 사람이 거부하면 임의동행할 수 없다.

이에 경찰은 "택시 블랙박스에 영상이 녹화돼있지 않아 증거관계가 불분명했고, 이 차관이 인적 사항을 제출하고 수사에 협조할 의향을 밝혀 귀가 후 출석시켜도 될 것으로 보고 발생 기록만 경찰서로 넘겼다"고 말했다.

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