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시간' 침묵 지키면서도 조만간 '거부권의 시간' 올까 고심

자성 촉구 메시지에도 민주 '마이웨이'…"文에 무기 남아있지 않아" 제어책 마땅찮아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박경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처리 속도전에 나서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도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이날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안건조정위 무소속 의원 몫을 고려해 탈당을 단행했고, 곧바로 민주당은 안건조정위 구성 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법안 강행을 위한 민주당의 발걸음이 빨리지고 있다.

청와대는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라며 여야 및 검찰의 대화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이 이처럼 속전속결로 법안 처리를 진행하면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금세 문 대통령의 '거부권의 시간'이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는 20일 현재까지도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찬반 여부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과 검찰 양측에 이번 이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한 노력을 당부한 만큼 지금은 청와대가 개입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YTN라디오에 나와 "지금은 대통령의 입장을 물을 시간이 아니고 검찰과 국회, 민주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입법을 하도록 대화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검수완박' 문제에 재차 거리를 두는 것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안을 언급하는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후에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거부권 행사 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민주당과 검찰 중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보여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설령 수사·기소 분리라는 문 대통령의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법안 내용에 대한 판단은 '국회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 일각에서는 검찰이 대안으로 제시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한 특별법'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검찰이 극적으로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섞인 기대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민주당은 강행처리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점점 '결단의 시간'으로 내몰리는 형국이 됐다.

청와대 내에서는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속한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이를 통과시킬 경우 국민의힘이나 검찰의 반발은 물론 '일방통행'에 따른 여론의 역풍까지 떠안아야 하는 진퇴양난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물밑 조율을 통해 민주당이 속도조절을 하도록 청와대가 중재에 나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민주당과 검찰의 대화를 어그러뜨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개입을 하더라도 임기를 고작 20일 가량 남겨둔 문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내 강경파들을 설득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섣부르게 속도조절 주장을 펼 경우 민주당 강경파는 물론 이재명계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오며 당내 갈등만 부추길 우려가 있다.

반대로 지금 나서서 검수완박 법안에 힘을 실어준다면 검찰의 거센 반발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언론중재법을 청와대가 물밑에서 조율할 때만 해도 문 대통령에게 그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 의원들이나 검찰을 설득할 '무기'가 문 대통령에게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청와대 정무라인이 민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강대강 충돌 정국을 타개하는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청와대가 이같은 추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철저하게 선을 긋는 것도 이같은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청와대로서는 딱히 수를 내지 못한 채 국회의 논의만 초조하게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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