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멕시코·베네수 등…"이데올로기 퇴조, 실익 좇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냉전 때 미국과 러시아 편으로 나뉘었던 일부 개발도상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른바 '신냉전'이 본격화하는 국면에선 중립적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런 국가들이 과거 이분법적으로 편을 나눈 기준이 된 이데올로기보단 실익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태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인 지난 2월 말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와 함께 연례 다국적 연합훈련 '코브라골드'를 실시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안보 동맹국 관계인 태국은 이 훈련을 1982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태국은 최근의 신냉전 국면에서 미국, 서방과 대치 중인 중국, 러시아 모두와 군사 교류를 진행해왔다.

2020년 자국군이 러시아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는 협정을 맺은 데 이어 작년 9월에는 중국과 대테러 군사 훈련 '공동운명-2021'에도 참여한 것이다.

냉전 시기 내부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미국과 밀착한 멕시코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불거진 미국과 러시아의 대치 구도에서 중립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7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를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하는 안에 멕시코는 태국과 함께 기권표를 던졌다.

멕시코는 러시아의 침공 행위를 규탄한다면서도 미국과 서방의 대(對)러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1일 "어떤 (대러) 경제적 보복 조치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 세계 모든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뿐 아니라 냉전 시기부터 러시아의 우방으로 여겨졌던 일부 중남미 국가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보적 입장을 보이는 낌새가 감지된다.

베네수엘라는 침공 직후에는 전쟁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탓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을 두둔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5일 베네수엘라는 수도 카라카스에서 미국 백악관·국무부 관계자들과 이례적으로 회동한 데 이어 자국에 수감된 미국인 2명을 석방하자 미국과 사이에서 훈풍이 분다는 평가가 나왔다.

쿠바와 니카라과도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지난달 2일 유엔이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때는 반대가 아닌 기권을 택했다.

이런 움직임은 이들 국가가 이데올로기의 힘이 약화한 신냉전 국면에서 강대국의 입장이 아닌 각자의 실익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냉전 당사국으로 꼽히는 미, 중, 러와 모두 군사 교류를 진행한 태국의 결정은 제국주의 시기부터 침략을 면하려 고수했던 균형 외교의 일환이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의 안보전문가 재커리 아부자는 "동남아 국가들은 신냉전 구도에 끌려가길 바라지 않는다"면서 "동남아 사람들이 쓰는 말처럼 코끼리가 싸울 때 짓밟히는 건 풀이다"라고 말했다.

콜롬비아 이세시대학의 블라디미르 루빈스키 교수는 "여러 중남미 국가가 미국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중남미에 대한 지정학적 영향력이 소련 시절보다 줄어든데다 소련이 아예 해체된 지금 러시아 역시 이 지역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호소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자금 지원 등 경제적 유인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우방국에게는 이전보다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pual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