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시 당직정지·권리당원 전원투표' 등 개정안, 중앙위서 비명계 반발에 제동

비대위, 당혹 속 긴급회의…권리당원 투표 뺀 수정안 재상정키로

우상호 "찬성 많지만 과반수 의결요건 못 채운 것…민주정당서 부결되면 대책 세워야"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정수연 정윤주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기소 시 당직 정지' 규정 및 '권리당원 전원투표' 관련 당헌 개정안이 24일 예상을 깨고 최종 단계에서 부결됐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당내 강성 지지층의 요구, 당내 비이재명계의 '사당화 논란' 쟁점화 등으로 계파 갈등 요소로 떠올랐던 사안이 마지막 단계에서 갑작스레 제동이 걸림에 따라 후폭풍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곧바로 긴급 회의를 거쳐 '권리당원 전원투표'가 부결의 주 요인이었다는 판단에 이를 제외한 수정안을 다시 상정하기로 했다.

수정안이 오는 25∼26일 다시 예정된 당무위·중앙위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후폭풍의 강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은 이날 중앙위원회 투표 결과 당헌 개정안이 최종 부결됐다고 변재일 의장이 발표했다.

안건은 재적 중앙위원 566명 가운데 267명(47.35%)이 찬성, 과반 정족수에 미달했다.

중앙위원회는 전국대의원대회의 개최가 곤란할 경우 그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는 당의 대의기구다. 당 소속 국회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지역위원 등 광범위한 관계자들이 참여해 80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날 중앙위의 부결은 안건에 담긴 당헌 제80조 개정안과 제14조의2 신설안에 대한 당내 이견이 표면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두 조항 모두 당내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진 바 있다.

우선 당헌 제80조 개정안은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되 당무위 의결을 거쳐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규정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 수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는 당직 정지 기준을 '기소'가 아닌 '하급심의 금고 이상 유죄판결'의 경우로 바꾸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반면 비이재명계에서는 당 대표 선출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를 검·경 수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탄용 위인설법' 아니냐며 반대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비대위에서는 기소 시 당직 정지 규정은 유지하되 구제 조항을 수정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정치 탄압 등이 인정될 경우 당직 정지를 취소할 수 있는 주체를 윤리심판원이 아닌 당무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당헌 제14조의2 신설안은 '권리당원 전원투표는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하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규정하고, 당원투표를 실시하는 경우 등을 명시한 것이다.

이를 두고도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일각에서는 강성 당원의 여론으로 당을 장악하려는 의도 아니냐며 반발했다.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를 무력화하고 결과적으로 이 후보가 팬덤을 앞세워 당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전준위와 비대위 논의 과정에서는 전혀 공론화되지 않다가 19일 당무위 결정을 통해서야 외부에 알려지는 등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절차적 문제점도 지적했다.

반면 이를 추진한 당 지도부는 이미 기존에 여러 차례 시행했던 권리당원 투표의 근거를 당헌에 마련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이 후보와 주변에서는 이런 논쟁에 대해서는 거리를 뒀다.

당내에서는 비이재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당헌 개정안이 중앙위를 무난히 통과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중앙위 투표를 통해 비이재명계의 반발에 동조하는 여론도 상당하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 됐다.

당장 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박용진 후보는 부결 직후 기자회견장을 찾아 "솔직히 가결 이후 입장문을 쓰고 있었는데 결과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다"며 "민주당 바로세우기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민주당 안에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서 정치하고자 하는 건강함이 훨씬 더 자리잡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통화에서 "당원 투표를 도입하지 않으려는 여의도 기득권 논리가 작동한 것"이라고 중앙위 결정을 비판했다.

당헌 개정을 추진해 온 지도부는 최종 부결되자 당혹감 속에 긴급 회의를 열고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비대위는 논의 결과 권리당원 전원투표와 관련된 당헌 제14조의2를 제외한 뒤 제80조를 포함한 나머지 개정안을 다시 당무위에 상정하기로 했다고 신현영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당헌 80조의 경우 이미 비대위의 수정안이 광범위한 동의를 얻은 만큼, 이날 부결 원인은 권리당원 전원투표에 있다고 보고 이를 제외한 뒤 8·28 전당대회 이전에 당헌 개정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정안을 처리할 당무위는 오는 25일 오후, 중앙위는 26일 오전 열린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긴급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내용을 보면 찬성이 더 많았지만 재적 과반수의 의결 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결된 것"이라며 "일부 중앙위원들이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정당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비대위의 결정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당헌 제80조 개정안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25일 당무위 이전인 오전 11시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당내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의총에서 반발 여론을 잘 설득하고, 이후 당무위와 중앙위까지 수정안을 통과시키느냐가 현 비대위의 마지막 과제가 될 전망이다.

당의 한 중진의원은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당헌이 쟁점 프레임에 걸려들었던 만큼 지도부가 좀 더 사려깊게 사전 설명과 의견 수렴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미숙했던 면이 있던 것 같다"며 "다만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선거 룰이 아닌 문제를 후보가 과도하게 문제삼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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