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파죽지세에 비판 비등…친정권 세력 사이에서도 "통제력 상실"

'불꽃놀이' 모스크바 건립 기념행사도 뭇매…"2024년 대선 지지 철회"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으로 러시아가 점령지 상당 부분을 빼앗기며 수세에 몰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러시아군이 지난 수개월간 장악했던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동북부 지역에서 최근 잇따라 퇴각한 점을 지적하며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년간 쌓아온 권력의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전선이 밀리는 것을 두고 "병력 재편성 작전의 일환"이라고 일축하며 자국 군대의 영웅적인 모습을 칭송하고 있지만, 전쟁 지지 세력 사이에서조차 노골적인 불만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전쟁이 6개월을 끌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점점 더 기세를 올리고 있으나 러시아 국민들은 희생을 더 감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압력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이자 정치평론가인 압바스 갈리야모프는 "푸틴의 정통성의 유일한 원천은 힘"이라며 "푸틴이 힘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는 그의 정통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우크라이나가 영토 수복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자 러시아 정부도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 지지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한 여론전 수위를 높이며 맞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데다 러시아 지배층 사이 혼란까지 가중되면서 러시아군이 현재 보유한 전력으로 과연 파죽지세의 우크라이나를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자인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정부 수장조차 최근 러시아군의 하르키우 철수를 겨냥해 "그들이 실수했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비판 메시지를 내는 판이다.

친푸틴 성향의 세르게이 마르코프 정치평론가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실수들로 인해 정치적 절차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고 있다"며 "이런 혼란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엉망"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지난주 전세가 급변하면서 '러시아군은 무적'이라거나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겁쟁이', '푸틴은 명민한 지정학적 전략가' 등의 메시지로 러시아 군중을 설득하는 것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불과 지난 7일만 해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전쟁으로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강변했지만, 이는 러시아군 사망자가 수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사실과도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다.

특히 모스크바 도시 건립 875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푸틴 대통령 주도로 불꽃놀이를 포함한 성대한 행사가 개최된 것을 두고도 "전장에서 싸우는 러시아군의 뺨을 때린 격"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친정권 성향인 '정의 러시아당'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당수는 이 축하연을 두고 "오늘도 우리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팔로워 40만명을 보유한 전쟁 지지 성향의 텔레그램 계정 관리자도 "2024년 대선에서 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오는 15∼16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남을 통해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는 등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선에서의 상황을 뒤집는 것은 물론, 서방의 제재로부터 러시아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다.

갈리야모프는 "우크라이나에서 악전고투가 이어질수록 러시아 집권층이 푸틴의 후계자를 세우려고 나설 수 있다"며 "지금처럼 러시아군의 패퇴가 이어진다면 이런 움직임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