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 미움 받아온 찰스 3세 아내 카밀라, 남편 국왕 즉위 후 결국 왕비 칭호 받아

30년간 걸친 불륜으로 '비호감 밉상녀'로 찍혀
다이애나 "이 결혼에는 세 사람이 있다"저격도
2005년 찰스와 재혼 불구 부정 시각 안 사라져
여왕 서거전 "카밀라 지지" 왕비 논란에 종지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의 두 번째 부인 카밀라 파커 볼스가 왕비 칭호를 받았다. 

8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6세로 서거하면서 장남인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음에 따라 찰스 3세의 부인인 카밀라 공작부인도 왕비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됐다. 찰스 3세와 첫 만남 후 52년동안 불륜 등을 이유로 갖은 비난을 당한 끝에 왕비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공식 호칭 '왕비 폐하'
영국 왕실 공식 홈페이지는 현재 카밀라의 공식 호칭을 ‘왕비 폐하(Her Majesty The Queen Consort)’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콘월 공작부인 전하(HRH The Duchess of Cornwall)’였다.
커밀라는 찰스 3세 국왕의 두 번째 부인이다. 커밀라는 지난 1970년 윈저성의 폴로 경기에서 찰스를 처음 만났다.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 호감을 느꼈지만 1973년 커밀라는 예정됐던 약혼자 앤드루 파커 볼스와 결혼했다. 왕실 주요 관계자들이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찰스는 결혼 소식을 들은 뒤에야 커밀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찰스 역시 지난 1981년 첫 번째 부인인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의 결혼 생활 속에서도 찰스는 카밀라와의 관계를 이어갔다. 다이애나가 생전에 “우리 결혼은 복잡했다. 세 사람이 있었으니까”라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끝까지 포기하지않은'사랑'
다이애나와 찰스의 결혼이 지난 1996년 파경에 이르고 다음 해인 1997년 다이애나가 비극적인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커밀라는 ‘불륜녀’로 지목돼 영국 뿐 아니라 전세계 대중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전 남편과 이혼한 뒤에도 길거리에서 야유를 당해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찰스와 커밀라는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커밀라는 찰스의 그림자로 지내며 왕실 가족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서서히 찰스의 배우자로서 위치를 굳혔다.
찰스와 커밀라는 다이애나비 사망 후 8년이 지난 2005년 4월 9일 결혼했다. 
35년만에야 합법적인 부부가 됐지만, ‘세기의 불륜’ 커플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영국인 상징인 차기 왕과 왕비가 된다는 것에 영국 국민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를 의식한 커밀라는 다이애나가 받았던 왕세자빈(Princess of Wales) 호칭 대신에 ‘콘월 공작 부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봉사와 자선활동 등 다양한 공무를 수행하며 입지를 넓혀나갔다. 그의 소탈한 성격도 널리 알려지면서 여론도 조금씩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여왕이 커릴라를 살렸다"
여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2월 6일 즉위 70주년을 기념한 성명에서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부인 커밀라가 왕비로 인정받길 바란다고 밝히면서, 커밀라는 비로소 예비 왕비의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여왕은 성명에서 “시간이 차서 내 아들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되면 여러분이 제게 줬던 것과 똑같은 지지를 그와 그의 부인 커밀라에게 줄 것으로 안다”며 “커밀라가 왕비로서 충직한 역할을 하면서 왕비로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커밀라의 전기 작가 페니 주너는 “즉위 70주년을 앞두고 온 나라가 여왕과 그 후계자에 집중하던 순간이었다”면서 “여왕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여왕의 서거 뒤에 커밀라의 호칭을 두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3세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5억불 상속…상속세는 면제

왕실 소유 자산 총 280억불
개인 소유나 임의처분 안돼

영국의 새 국왕으로 즉위한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면서 어머니로부터 약 5억달러(약 7000억원)을 상속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포브스에 따르면 왕실이 소유한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 약 280억달러(약 39조원) 정도로 추정되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개인 재산은 약 5억 달러(약 7000억원)로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자산은 예술품, 보석류, 부동산 구매 등을 통해 축적한 재산으로 여기에는 2002년 상속받은 7000만달러(약 968억원)도 포함됐다.
통상 영국의 명목 상속세율이 40%인 점을 고려하면 찰스 3세는 2억달러(약 2766억원)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그러나 국왕 후계자에게는 상속세를 면제하는 영국 법에 따라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다만 영국 왕실이 소유한 자산은 찰스 3세가 개인 소유하거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왕실이 소유한 자산을 살펴보면 △왕실 재산 운영재단인 ‘크라운 에스테이트 195억달러(약 26조9000억원) △버킹엄궁 49억달러(약 6조7000억원) △콘월 공작 자산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 △랭커스터 공작 자산 7억4800만달러(약 1조원) △켄싱턴궁 6억3000만달러(약 8700억원) 등이다.
이 중 영국 정부가 크라운 에스테이트 수입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정액을 왕실에 돌려주는 왕실 교부금은 약 8600만파운드(약 1380억원)에 달했다. 이는 크라운 에스테이트 수익의 약 15∼25%에 해당된다. 나머지 수익은 영국 정부 국고로 들어간다.

여왕의 관, 30년 전 이미 준비
고가의 영국산 참나무로 제작…왕실 장식 부착 가능 설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그의 관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시신이 든 참나무 관은 스코틀랜드 왕기(Royal Standard of Scotland)로 덮였다. 관 위의 화환은 밸모럴성 영지 내에서 구한 꽃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참나무 관은 언제 누가 제작했을까.
영국 왕실의 장례 절차에 협력해온 업체 '리버튼앤선스'(Leverton & Sons)에 따르면 이 참나무 관은 30년보다 더 오래전부터 여왕을 위해 준비됐다.
1789년 설립된 이 회사는 1991년부터 영국 왕실의 장례 행사를 도맡아왔다. 당시 리버튼앤선스는 이전에 왕실 장례를 담당하던 회사 '케니언스'로부터 이 참나무 관을 넘겨받았다.
리버튼앤선스픗릉 "엘리자베스 2세의 관은 구하기 힘든 영국산 참나무로 만들어졌다"면서 "요즘 영국산은 너무 비싸서 주로 미국산이 쓰인다"고 밝혔다.
여왕의 관 내부는 납으로 연결돼 있어 상당히 무겁다. 여왕의 관은 군인 8명에 의해 운반됐다. 관이 흙에 묻히지 않고, 교회 지하 납골당에 안치되는 것을 고려해 설계됐다.
회사 대표는 "여왕의 관은 하루 이틀에 바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관 뚜껑에는 유품을 비롯한 왕실 장식을 고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 행사에서 관 위에는 여왕의 왕관(Imperial State Crown), 구(Orb), 홀(Sceptre)이 올려질 예정이다. 관 뚜껑에 설치된 황동 고정 장치는 이들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하늘에 여왕님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날 영국의 하늘에는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 여왕 모양의 구름이 나타났다. 지난 8일 웨스트미들렌즈 슈롭셔 주 거주 한 주민은  여왕의 서거 수시간후 이같은 구름을 보고 SNS에 올렸다. 하늘에 뜬 구름 모양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실 임무를 수행할 때 즐겨 쓰던 모자를 쓴 것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 앞서 여왕의 서거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버킹엄 궁전 상공에는 무지개가 뜨기도 했다. 이를 두고 많은 시민들은 "여왕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정말 우리를 떠났다"며 여왕의 서거 소식에 슬픔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