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체류 최장기록' 러시아 과학자 폴랴코프 80세로 별세

착륙선 박차고 걸어나왔던 건강체…동료 우주인 "곰과도 싸울 듯"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크고 강인해 보였습니다. 곰이랑 붙어도 싸울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미국인 우주비행사 노먼 타가드는 1995년 미르 우주정거장에 갓 도착했을 당시 마주쳤던 러시아 과학자 발레리 폴랴코프의 첫인상을 이같이 돌이켰다.

우주 공간 최장기간 체류 기록을 보유한 폴랴코프가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1942년 4월 27일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 소재 세체노프 의과대학에 입학, 박사학위까지 딴 후 생의학문제연구소(IMBP)에서 우주 공간 의료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진행했다.

폴랴코프는 1972년 우주인으로 선발됐고, 1988년 소유스호에 탑승하며 처음으로 우주 비행을 경험했다.

6년 뒤인 1994년 1월 8일 시작된 그의 두번째 비행은 이듬해 3월 22일까지 장장 437일 17시간 38분간 이어지며 인류 역사상 최장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그는 화성까지 탐험하는 것을 가정했을 때, 미소중력(무중력에 가까울 정도로 중력이 적은 것) 상태에서 인체가 얼마나 생존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이 프로젝트에 자원했다.

이후 1년 3개월여간 미르 우주정거장에 머무르며 지구를 7천75바퀴 선회했고, 총 1억8천700만마일(약 3억㎞)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한 것으로 집계됐다.

폴랴코프는 이 기간 체력 단련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 덕이었는지 지구로 귀환했을 때에도 착륙선 문을 제 힘으로 열고 나오는가 하면, 곧장 동료 직원으로부터 담배를 빼앗아 물고는 브랜디를 홀짝거릴 정도로 힘이 넘쳐 주변을 놀라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우주인들은 대기권 밖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근력이 약해지는 탓에 지구로 돌아온 직후에는 중력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에서다.

폴랴코프가 세운 우주 체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미르를 대체한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지난 3월 지구로 귀환한 마크 반데 헤이가 우주 체류시간 총 355일을 넘기며 미국인 기록을 세웠을 뿐, 폴랴코프에는 82일이 모자란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폴랴코프가 인간의 장기 우주비행에 대한 생물의학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는 이날 "폴랴코프의 연구는 인체가 지구 근처 궤도뿐 아니라 먼 우주로 비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도움을 줬다"며 "소련의 영웅, 러시아의 영웅이었던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추모했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