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브라질·필리핀 등 극우정파 득세

"세계화 반감 이용"…키워드는 포퓰리즘·양극화·탈진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서방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권위주의 스타일의 정치 지도자들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됨에 따라 지난 수십년간 많은 국가에 정착한 서방식 자유 민주주의 흐름에 변화가 감지된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탈리아에서 브라질, 미국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많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극우 권위주의를 받아들이며 푸틴 대통령을 닮아가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WP는 최근 선거로 선출된 서방식 민주국가의 수반 상당수가 강경한 우파적 성향을 지녔다는 공통점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먼저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달 총선으로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이끄는 보수 연합이 승리하면서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FdI 당수 조르자 멜로니가 사상 첫 여성 총리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강한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멜로니는 반이민·반유럽통합 등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로,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1922∼1943년 집권한 이래 꼭 100년 만에 다시 극우 정권이 탄생하게 된 셈이다.

이달 초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는 '좌파 대부'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파인 현직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접전을 벌임에 따라 결선 투표로 최종 승부가 가려지게 됐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번에 투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선거 전반에 의구심을 불어넣는 '음모론' 전략을 사용했다.

지난 5월 필리핀에서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수십년의 철권통치 끝에 혁명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지 36년 만에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가 지난 5월 대선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WP는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 위성국가는 물론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난 중동에까지 (서방식)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듯했지만, 이런 흐름은 오래 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수년간 세계화, 정치적 양극화, 소셜미디어의 부상,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 등 속에서 정부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이는 민족주의적 해법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고, 극우 독재자들 사이 유대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것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이 권위주의 통치로 기우는 나라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라는 진단이다.

또한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푸틴 대통령이 서구의 성소수자 인권 의식을 맹렬히 비난한 발언 같은 것들이 유럽 내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서구 엘리트는 도덕 규범과 종교, 가족 등을 급진적으로 부정한다. 믿음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전복"이라며 "러시아에서도 학교에서 여자와 남자 외의 성별이 있고,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다고 가르쳤으면 좋겠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캐슬린 프라이들 교수는 "정치적 극우 운동은 세계화로 인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한 것"이라며 "나라마다 원인과 사정은 다르지만, 푸틴이 권위와 통제의 모델처럼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모이제스 나임 최고연구원은 이런 정치지도자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포퓰리즘(populism), 양극화(polarization), 탈진실(post-truth) 등 '3P'를 꼽으며 "포퓰리즘 지도자들은 갈라친 뒤 정복하는 전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나임 연구원은 "'정체성 정치'를 통해 정당은 스포츠팀처럼 변질되고, 사람들은 각각 고정된 진영으로 양극화하는 것"이라며 "소셜미디어로 인해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다만 미국 해군대학의 니컬러스 그보스데프 교수는 "사회에 극단주의적 경향이 잠재돼있더라도,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은 정치지도자 개인의 면면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런 흐름이 장기간 지속될지 여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나임 연구원은 "아무도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를 예측할 수 없지만, 그 해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사법부 독립, (집권자의) 임기 제한이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