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살해하고 수천만원 대출받아…귀금속·유흥비도 결제

8월 동거녀 살해 뒤에도 동거녀 신용카드로 결제

경찰 "금융 영장 발부되는 대로 면밀히 조사"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약 4개월 새 동거녀와 택시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의 범행 후 행적이 차차 드러나면서 범행 동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의자는 홧김에 발생한 일이었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지만, 범행 직후 피해자의 신용카드로 거액을 대출받는 등의 행동으로 보아 금전을 노린 계획범행이었는지를 경찰이 집중해서 추궁하고 있다.

28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로 구속된 A(32)씨는 일면식도 없던 60대 남성 택시 기사 B씨를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한 뒤 B씨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또 귀금속을 구입하고 술값과 유흥비를 결제하는 데 신용카드도 사용했는데, 이 금액들에 대출금을 합하면 약 5천만원에 달했다.

집 안 옷장 속에 시신을 유기한 뒤 검거되기까지 불과 닷새 사이에 이런 일들을 모두 벌인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접촉사고를 낸 뒤 "경찰을 부르지 않는다면 합의금과 수리비를 충분히 주겠다"면서 집으로 데려간 경위 또한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과거에도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며 현재는 무직으로 알려진 A씨가 합의금조로 줄 만한 현금을 실제로 집에 보유하고 있었을지 등을 고려해보면 애초에 B씨를 속였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이후 집에서 B씨와 다투게 됐고, 홧김에 둔기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는 A씨가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는 내내 동거녀 살해 사실에 대해서 거짓된 진술을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 8월 초 집주인이자 동거하던 여성인 C씨를 둔기로 살해해 시신을 천변에 유기했음에도 C씨의 행방을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일하러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연락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A씨의 거짓말은 그의 차량 뒷좌석에서 C씨의 혈흔으로 추정되는 자국이 발견되는 등 여러 정황 증거가 나오면서 이틀 만에 들통났다.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결과 A씨는 C씨를 살해한 뒤 C씨 신용카드를 2천만원가량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C씨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퉈서 홧김에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 명의의 신용카드를 몇 달 동안 대담하게 사용한 것인데, 나아가 집까지 차지하고 또 다른 여자친구를 데려와서 함께 지냈던 것이다. 이 여성이 택시기사의 시신을 최초로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다.

또 C씨의 아파트에는 1억원가량의 대출로 인한 가압류가 걸린 상태였는데, 금융기관의 채무 독촉 시기 등이 10월께여서 경찰은 이 대출금은 C씨가 살아있을 때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을 빌리는 데도 A씨가 적극적으로 관여했는지, 대출금은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은 금융 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A씨는 C씨와 교제한 지 몇 년 됐으며, 함께 산 건 올해 4월부터라고 진술했다.

택시 기사 사건과는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경위 등이 차이가 있지만, 범행 직후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경찰 관계자는 "우발적 범행이 아닐 가능성 등 범행동기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면서 "피의자는 '살인죄를 자백한 마당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더 의심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지만, 금융 거래 내역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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