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관계 관리 필요성 여전…정부 '신중 모드'

러시아 '외교채널 항의' 아직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오수진 기자 =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영향'을 거론하며 반발하면서 한국이 처한 대러관계 '딜레마'가 더욱 부각되는 모습이다.

한국도 자유 진영 일원으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한반도 문제 등을 고려해 한러관계를 계속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성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보도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대량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과 같이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면, 우리가 인도주의적 또는 재정적 지원만 주장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선을 그었던 군사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자 러시아 당국은 "한반도 안보 상황의 맥락에서 우리의 양자 상호 작용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주한 러시아 대사관)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무기 공급을 "적대적인 반러 행동으로 간주한다"며 이는 양자 관계에 부정적으로 반영될 것이며 "한국의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입장에 관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면 북핵 해결에 협조하는 대신 북한의 '뒷배' 역할을 해 한반도 문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한러관계가 갖는 중요성 등을 고려해서라는 관측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자유 수호와 평화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인도적 지원 등을 포함해서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같은 날 오전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 대열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한러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 해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균형을 맞춰서 충족"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아도 아직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러시아가 이번 발언에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별도로 입장 전달이나 항의를 해온 것은 없으며, 주러 한국대사관과 러시아 현지 당국 간에는 평소와 같은 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이 경우 양국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후에 양자 차원의 변화나 추가적인 러시아 측 대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러시아는 한국을 비롯해 대러 제재 등에 동참한 48개 국가를 '비우호국'으로 지정했지만,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는 미국과 유럽 국가 등 다른 비우호국보다 다소 완화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8년 한러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등 과거 한러관계 악재와 비교했을 때도 지금은 상황이 비교적 관리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느 때보다 심해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대립이 한반도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도발 대응을 번번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의 북핵 수석대표인 류샤오밍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를 방문,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만나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라"는 기존 중러의 입장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딜레마 속 '균형잡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 주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및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자유 진영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고조될 수 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윤 대통령의 이번 인터뷰와 관련해 "한국이 자국제 첨단 군사장비를 제공함으로써 러시아 침략자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지원하려는 선도적인 민주주의 국가들의 노력에 합류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