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원 내친 모로코…"앙숙 알제리랑 친해서"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120년 만의 강진으로 2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온 모로코가 주변 국가들이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지원 손길을 받지 않고 있다.

11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모로코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많은 국가가 지원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쿠웨이트, 튀르키예, 이스라엘, 대만, 오만, 스위스는 물론 2년 전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했던 알제리까지 "모로코를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공식 지원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미국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기 위해 즉시 모로코 정부에 연락했다"며 "어디서 어떻게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모로코 정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로코 정부는 현재까지 스페인, 카타르,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4개국의 지원만 승인했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지난 10일 성명에서 "우방인 스페인, 카타르, 영국, UAE의 원조 제안을 수락했다"면서 "필요에 따라 다른 우방국에 지원 요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모로코는 더 광범위한 차원의 인도주의적·기술적 지원을 받는 것도 주저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유엔은 모로코에 전문가를 파견하고 지원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은 모로코 정부가 "스스로 원조를 동원하려 하고 있다"며 "조만간 더 많은 양자 간 합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가 모로코의 원조 거부에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WP는 1912년부터 1956년까지 모로코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모로코의 태도에 놀랐으며, 이를 두고 이민과 기타 문제들로 양국 간 관계가 냉각됐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BBC는 알제리와 더 가까워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행보로 프랑스와 모로코의 관계가 경색됐다고 진단했다.

모로코와 알제리는 국경 문제 등으로 수십년간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으며 알제리는 지난 2021년 적대행위를 이유로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했다.

그러나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프랑스를 포함한 60개국이 지원 의사를 밝혔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과장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콜로나 장관은 프랑스 BFM TV에 출연해 모로코가 프랑스의 도움을 거부하지 않았다며 모로코 현지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와 국제 비영리 단체에 54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기술 구호팀 50명이 모로코로 가기 위해 쾰른 본 공항에 모였지만 결국 파견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튀니지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로코에 구호 지원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파견이 이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모로코가 이번 재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받는 데 소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모로코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를 주저하는 동안 모로코 국민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모로코의 비평가인 마티 몬지브 작가는 BBC에 "주권과 국가적 자존심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원조가 필수적이므로 거부할 때가 아니다. 선진국들도 재난에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모로코 내무부는 11일 오후 7시까지 이번 지진으로 2천862명이 숨지고 2천562명이 다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dy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