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한국어 학교 ‘아바나 한글학교’ 정호현 교장 …“수교 계기 K-문화 열기 확산 기대”

[특별기획/65년만에 열린 쿠바를 가다]

2022년 정식으로 사립 학교 승인받아 개교
120여명 ‘열공’…교사 학생 모두 한국 이름
2005년 방문했다 눌러앉아, 현지인과 결혼
“양국 교류 앞장설 한국 전문가 양성 심혈”

"할 일이 더 늘어나고 바빠지겠지만, 그래도 좋네요"

쿠바 수도 아바나 한글학교에서 만난 정호현(51) 교장은 한국과 쿠바 수교 발표가 있었던 지난 14일 휴대전화를 손에 내려놓을 겨를이 없었다.

한글학교에 다니는 쿠바 현지 학생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미디어에는 하트 이모티콘이 붕붕 날아다녔고, "믿기지 않아 울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정 교장은 쿠바 거주 한인(현재 30명 남짓) 중 맨 처음 쿠바 영주권을 받은 인물이다.

방송 기획과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분야를 공부한 정 교장은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인 후손 프로그램 제작 때 쿠바를 방문했다가 "쿠바에 반해" 그대로 눌러앉았다.

2007년엔 현지인과 결혼했고, 한국으로 잠시 이주했다가 다시 쿠바로 돌아갔다.

당시 이런 스토리는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쿠바의 연인'(2010)에서 다뤘다. 이런 연유로 한인 후손과 교민 사이에서는 그를 정 감독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 교장은 미수교국 당시 쿠바에서 혼인신고부터 출생신고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행정 관련 뭐 하나 선례가 없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만한 여지도 없었다"는 그는 "한국과 쿠바가 미수교국이다 보니 (국가 간에)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보니 출생신고의 경우 일본 주재 쿠바대사관을 끼고 쿠바에 서류를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전체 소요 기간만 8∼9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한때 한국에서 신혼여행 부부와 관광객 발길이 쿠바로 이어지던 때엔 현지를 알고 싶은 이들의 든든한 안내자 역할도 했던 그는 유튜브 채널 '까날 쿠바'를 통해 한인 후손 이야기나 한류 열풍 등 쿠바 관련 소식을 전했다.

정 교장은 현재는 한글학교 업무에 힘을 쏟으며 쿠바인 한국 전문가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쿠바 아바나의 한국문화센터·한글학교는 도로에서 눈에 잘 띄진 않는 크기지만, "쿠바에서 거의 유일하게 밖에서 태극기를 볼 수 있는" 장소다. 쿠바에 있는 유일한 한국학교다.

이 곳은 쿠바 한글학교는 2022년에 옛 재외동포재단(현 재외동포청)의 지원을 받아 개교했다.

주멕시코 대사관으로부터 재외교육 기관 등록증을 받았고, 쿠바에서도 정식 사립학교로 승인을 얻었다.

애초 쿠바에는 2012년 아바나국립대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가 있었다. 이 수업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18년께 중단됐다. 중간중간 한인 후손 등이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열악한 재정 상황 등으로 문을 닫았다.

한글학교는 문을 연 직후부터 현지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한류 팬들의 입학 문의가 줄을 이었는데, 현재 120여명의 학생은 대부분 K팝 또는 K드라마를 좋아하게 되면서 한국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된 케이스다. 정 교장을 포함, 교사는 4∼5명 수준으로 유지돼왔다.

학생들 연령대는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각자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한자의 뜻까지 꼼꼼히 공부해 자신의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교실에서 만난 교사 토레스는 자신을 강해주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바다의 진주'라는 뜻이라고 했다.

학생 신양(21·본명 라첼 페레스) 씨는 "하나님의 양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담겼다"고 말했다.

한국어 실력이 상당한 학생들도 여럿 있다. 지난해 10월 쿠바에서 치러진 한국어능력시험에서는 한국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의 점수를 받은 학생이 수십명 나왔다고 한다.

정 교장은 "한국과 쿠바 수교를 계기로 교류가 점점 늘어나면, 한국 기업 입사 등 한국어 지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치가 상당한 것 같다"며 "무엇보다 학술 교류나 언어 교류 등이 이어질 것이라는 학생들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