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구 부수고 5개월째 멕시코 대사관에 망명 피신 부패 혐의 에콰도르 부통령 무단 연행

[멕시코]

“국제법 위반, 명백한 주권 침해”

다른 남미 국가들도 일제히 비판

에콰도르 “신병 요구 거부한 탓”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5일 에콰도르와의 국교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치외법권인 에콰도르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 현지 경찰이 무단으로 진입, 멕시코 망명을 신청한 전직 에콰도르 부통령을 체포한 데 따른 조처다.

AP통신에 따르면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날 "에콰도르 경찰이 우리 대사관에 강제 진입해, 박해로 망명 절차를 밟고 있던 그 나라 전 부통령을 구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국제법과 멕시코의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규탄하면서 외교부에 에콰도르와의 외교관계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알리시아 바르세나 멕시코 외교장관 역시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에콰도르와의 외교관계 즉각적 단절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앞서 에콰도르 경찰은 이날 저녁 자국 수도 키토에 있는 주에콰도르 멕시코 대사관 출입구를 부수고 진입해 작년 12월부터 이곳에 머물러 온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을 체포했다.

글라스는 좌파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전 정권과 레닌 모레노 전 정권에서 2013∼2018년 부통령을 지냈다. 그는 2016년 마나비주(州) 지진 피해 복구비를 불법 전용한 혐의(횡령) 등으로 체포될 처지가 되자 멕시코 대사관으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콰도르는 멕시코에 글라스 전 부통령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글라스 전 부통령이 정치적 박해를 받아왔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이 문제는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번졌다.

에콰도르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글라스 전 부통령을 체포한 사실을 확인하며 "에콰도르는 주권국이며 어떤 범죄자도 자유롭게 지내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글라스 전 부통령의 신병 인도 요구를 멕시코 정부가 거부한 결과라고 맞섰다.

가브리엘라 소메르펠드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글라스 부통령이 곧 멕시코로 비행하리라는 정보를 고려했다”며 “멕시코와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후 대사관 강제 진입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글라스 전 부통령은 에콰도르 항구 도시 과야킬 내 교도소에 수감될 예정이다.

한편 주변 남미 국가들은 에콰도르의 강제 진입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외국 대사관 강제 진입이 국제법 위반인 데다가, 권위주의 정부가 우세한 남미 지역에서는 그간 ‘외교적 레드라인’으로 금기시돼왔기 때문이다. AP는 “외국 대사관 급습은 남미 지역에서 가장 비판을 받는 정부조차 감히 이행하지 못했던 조치”라고 짚었다.

실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페루 베네수엘라 쿠바 칠레 등 중남미 국가 정부들은 일제히 규탄 성명을 냈다. 온두라스는 이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중남미 3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의 긴급 소집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