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힘 있는 놈이 정의로운 거야. 정의로운 놈이 힘 있는 게 아니고…."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킹>에 나온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권력을 잡기 위해 검사가 된 '박태수'(조인성)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실세 검사 '한강식'(정우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박태수는 부와 권력을 좇으며 부패한 세계에 빠져들지만, 결국 이용당하고 버려지며 권력의 민낯을 깨닫는다.
▶1895년 '재판소구성법' 공포
한국의 검찰 제도는 1895년 '재판소구성법' 공포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제도화된 이후 일제 강점기엔 식민통치의 도구가 됐고, 해방 이후에도 주요 사법기관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박정희 정권은 비대해진 경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1972년 유신헌법은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이는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헌법적 권한으로 승격시킨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검찰은 권력 앞에서 무력하거나, 때로는 권력의 도구로 활용됐다. 특히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검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검찰은 독립적인 권력기관으로 성장했지만, 권한이 커진 만큼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수사
서울고검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6개월 전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을 때부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중 무혐의로 결론낸 수사를 퇴임 직후 본격화한 것이다. 검찰은 주가 조작 관련자 9명 전원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수사 방향이 전환되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의아함을 품을 수밖에 없다.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쥔 구조가 정의 실현보다는 권력의 이해 관계 속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어차피 이 사건은 특별검사를 통해 밝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기소권·수사권 동시에 쥔 권력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는 구조를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자신의 피수사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향후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검찰은 사실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지만, 현실에선 수사가 기소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거나 기소를 피하기 위해 수사를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검찰 권력은 구조적으로 오남용 가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저무는 검찰 권력 시대
검찰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권력에 기대어 권력을 향유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실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검찰은 사회적 저항과 신뢰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젠 존재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수사는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 선택은 검찰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