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김정은·영국 국왕 등 '친필서한' 과시…관세통보도 서한 형식
"트럼프 편지 격식·분위기 좋아해" "황제같은 허례허식 좋아하는
격식을 갖춘 편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각별한 애착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자기 명의의 서한을 통해 각국 정상에게 개별적으로 통보된 이례적 형식 때문에 다시 부각된 독특한 취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서한을 통해 수십개국에 자의적으로 책정한 소위 '상호관세' 세율을 통보했다.
그가 트루스소셜을 통해 일일이 공개한 서한에는 황금빛 백악관 문양을 지닌 레터헤드, 형식에 충실한 본문, 자신의 서명이 담겨있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 일본에 보내는 편지를 들어 보이며 "대통령이 서명한 아름다운 편지"라고 강조했다.
양질의 편지지, 돋을무늬로 시작되는 레터헤드, 친필 서명을 갖춘 서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소통 수단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편지로 저격하려는 움직임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여러 차례 목격된 바 있다.
가깝게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7일 백악관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서를 내민 사례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보낸 이 서한에 새겨진 황금색 레터헤드와 푸른색 잉크가 도드라진 서명을 보면 감탄을 쏟아냈다.
그는 "정말 고맙다"며 "당신에게서 받은 것이니까 특히 아주 의미가 있다"고 화답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네타냐후 총리처럼 지난 2월 편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스타머 총리는 백악관 방문 때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전하라고 했다며 양복 속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 전달했다.
그는 "폐하로부터 편지를 받아와 기쁘다"며 국왕의 편지를 직접 전달해도 될지 짐짓 예의를 갖춰 물어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기뻐하며 편지를 취재진에 들어 보였고 국왕의 서명과 고품질 편지지에 "아름답다"고 감탄을 쏟아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여러 차례 편지를 나눈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애착과 관련해 자주 거론된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1기이던 2018년 6월 김영철 당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때 거대한 친서를 함께 보내 환심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김 위원장과 '러브레터'를 교환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소통에 흡족함을 드러냈다.
그는 2020년 대선 패배 뒤 플로리다 자택에 기밀을 가져간 혐의로 수사를 받았는데 거기에 김 위원장의 친서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인 보물처럼 따로 관리할 정도로 서한에 애착이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로 주목되곤 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올해 1월 백악관을 떠날 때 집무실 책상 서랍에 남겨둔 편지도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때문에 주목받았다.
정적인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온갖 독설을 쏟아내던 그였지만 편지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며 차분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언론, 전현직 관료들, 학자들은 이 같은 풍경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집착과 연관이 있다고 관측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와 소셜미디어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분석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편지는 트위터와 정반대로 공식적인 것과 관련된다"며 "트럼프는 이메일,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편지에는 일정량의 노력이 들어간다"며 "편지는 쓰고 타이핑하기 때문에 어떤 수준의 심각성이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백악관 관리도 WP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소통 수단을 쓰지만 공식적 사안엔 서한을 중요시한다고 확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의 격식과 분위기를 좋아한다"며 "이는 오늘날 디지털 세상에서는 비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누군가 전통적인 편지 같은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 사랑은 국제사회에서 지존처럼 존경과 아첨을 받기를 원하는 욕망이 뿌리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컬럼비아대의 대통령 역사학자 티머시 나프탈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농반진반이긴 했지만 자신을 왕으로 칭한 적이 있다"며 "황제 같은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적인 편지를 좋아하는 게 이런 성향과 거의 일치하지 않느냐"며 "이는 19세기, 20세기 초반의 표현 방식인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베르사유(프랑스 왕정) 스타일 같은 뭔가가 있고 친필 편지에 대한 사랑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