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에서 주로 평범한 공화당 지지자들(Republicans)이 부유층의 민주당 지지자들(Democrats)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리무진 진보, 리무진 좌파 정도다. 상류층 사치재인 리무진을 타며 권력과 부를 누리지만 정치적으론 약자 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뜻한다. 입으로는 정의와 약자 배려, 부의 평등을 외치는데 뒤에선 호화 생활을 누리는 위선자들을 비꼬는 용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美 진보좌파 리더의 민낯
미국에선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리무진 리버럴로 이슈화됐다. 공교육의 가치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나 자기 자식들은 사립학교에 보낸 사람들, 환경 보호와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숲을 밀고 거대 별장을 짓거나 배기량 큰 차를 타는 사람들, 약자 보호를 부르짖으나 뒤에선 갑질을 일삼는 사람 등이다. 미 진보좌파 진영을 대표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부유층 징벌 과세, 수정사회주의 도입 등을 주창했고 심지어 '백만장자가 사라져야 할 당위성'을 강조해 대권 주자군까지 올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신이 백만장자인 데다 부동산과 펀드 투자에도 능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샀다.
► '샴페인 좌파''고슈 캐비어'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표현이 많다. 영국에서는 이들을 '샴페인 좌파'로, 프랑스에선 '고슈 캐비어'(캐비어 좌파)로 부른다. 캐비어는 소수 상류층만 먹는 초호화 음식이다. 억만장자가 많은 미 영화계에 역설적으로 좌파가 다수란 점에서 '할리우드 좌파'란 표현도 있다. 지명도 등장한다. 미국에선 뉴욕 부자들이 몰려 사는 센트럴파크 인근 5번가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피프스 애비뉴 리버럴'(5th Avenue Liberal)이란 말이 나왔다. 영국도 런던의 부촌인 햄스테드에서 좌파 노동당 지지세가 더 강하게 나타나자 '햄스테드 리버럴'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강남 좌파'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건 부르주아인데 좌파를 지향하는 자체가 문제여서가 아니다. 겉과 속, 앞과 뒤가 다른 위선과 모순에 분노하는 것이다. 차라리 속물 본성을 인정하며 본능을 드러내면 어느 정도 이해받지만, 도덕론을 설파하며 남들을 공격하던 사람이 사실 뒤에선 속물근성을 보이고 다니는 걸 사람들은 원래 싫어한다. 남에게만 희생과 의무를 강요하는 걸로 비칠 수도 있다. 다만 프랑스 좌파 언론인 로랑 조프랭의 저서 '캐비어 좌파의 역사'를 보면 좌파는 이런 캐비어 진보도 환영하며 우군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승리를 위해선 샴페인에 캐비어를 곁들이는 부르주아라도 프롤레타리아 편을 들어 여론전을 해주는 게 유리하다. 지식과 부를 겸비한 여론 주도층인 이들을 배제한 채 선거에서 이기긴 어렵다.
►새 정부 조각의 고민
새 정부 조각을 위한 국회 검증 과정에서 몇몇 인사들의 과거가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두 여성 장관 후보자의 행적과 도덕성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좋지 않다. 제기된 의혹들은 갑질, 직장 내 괴롭힘, 제자 논문 표절, 자녀 불법 조기 유학 등인데 청문회 단골 메뉴이긴 하다. 그러나 이제 막 출발한 정부로서 부담인 건 이 문제들이 '약자의 정파'를 자임하는 여권이 앞장서 근절하겠다고 공언해온 이슈들이란 점이다. 여당은 오래전 갑질 근절을 위한 '을지로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현재도 운영 중이다. 논문 표절과 자녀 불법 유학 의혹이 제기된 후보의 소관 부처가 하필 교육부란 점도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친여 성향 단체와 언론마저 뒤늦게 두 후보자 사퇴 요구에 가세하자 여권 내부에서도 사퇴 찬반 의견이 갈릴 정도다. 정국 주도권까지 고민해야 하는 인사권자로선 머리 아픈 상황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