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끓어오른 감정 가라앉히고 정책적 토론과 논쟁으로 전환해야"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가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촛불'과 '태극기'로 대변되는 사회 분열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온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전날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을 어긴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법치 수호를 위해 헌법 정신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헌재 결정에 불복한 단체들이 집회나 시위를 이어가면 대선 정국과 맞물려 사회적 갈등의 심화·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과 학계 원로들은 한국 사회가 이제는 일상을 회복하고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헌재의 판단은 박 전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물은 것"이라면서 "이제 국민이 인용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촛불과 태극기 갈등을 계속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탄핵이 인용되면 승복하지 않겠다는 말이 많았는데 미래 비전을 향해 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판결에 승복하고 더는 국론 분열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우선하여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국론 분열을 수습하고 대통합을 해야 한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박 전 대통령과 탄핵에 반대해온 여권 일부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부터 깨끗이 승복하고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불복하지 않도록 수습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헌재 판결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자정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태극기 부대를 동원하듯이 하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몇몇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탄핵 인용 시 승복하겠다는 답변자 비율이 70∼80%에 달한 점을 언급하면서 "국민의 의사가 탄핵이고 헌재도 인용했다. 이미 대다수 의견으로 국민 통합은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이어 "자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임이 밝혀지고 그게 잘못된 의견이라는 게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확실히 드러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국민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다수는 우리 사회가 이런 혼란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민주적인 정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영수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통제가 너무 없었다"면서 "개헌으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하며, 선출 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을 내실화·합리화·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화되다 보니까 승자가 독식하는 반면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는 없는 형편"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한지붕 두 가족'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차기 정권은 '인사 탕평책'을 써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이병훈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겉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 사고방식과 행동, 스타일이 바뀌어야 완성된다"면서 "정치 지도자들과 시민들 모두 공존과 다양성, 화합을 고민해 우리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몇 달간 이어져 온 정치·사회적 혼란이 넓게 보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며,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데에 큰 틀에서 동의했다.

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는 상당한 갈등과 이견을 헌법이 제공하는 법적 절차를 통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이제 끓어올랐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이를 정책적인 토론과 논쟁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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