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문서로 철거날짜 합의' 요구했지만…당국간 접촉 기회 마련될 수도
정부, 적극적 금강산 해법 역제안할 듯…대미협의도 예상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정성조 기자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시한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에 대해 북한이 25일 협의 제의 통지문을 통해 첫 '행동'에 나서면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이날 금강산국제관광국 명의로 통일부와 주사업자인 현대그룹에 각각 통지문을 보내 "합의되는 날짜에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 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은 "실무적 문제들은 문서교환방식으로 합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철거 지시가 지난 23일 공개된 지 이틀 만에 북한이 신속하게 후속 움직임을 취한 것이다.

일단 북한이 대면 협의가 아니라 '철거 날짜' 등 실무적 문제에 대한 문서 교환 방식의 협의를 제안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표면상으로는 남측과 철거에 필요한 실무적 쟁점만 논의한 뒤 철거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서를 주고받는 방식은 대면 협의와 달리 사무적인 수준의 의사 교환밖에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남측 인사들의 금강산 방문 등의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 당국 간 접촉이나 의견 교환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강산관광과 관련된 내용들은 어쨌든 당국 간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식통은 "문서상의 협의기는 하지만, 문서를 통해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금강산 관광 문제를 풀어나갈 여러 해법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 북측에 역(逆)제안할 것으로 전망된다.

꽉 막힌 남북관계에 역설적으로 열린 '틈'을 활용, 포괄적인 금강산 문제로 논의의 차원을 넓혀 현재의 국면을 돌파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정부가 이날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상민 대변인은 "국제환경이라든지 남북관계 진전,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를 고려해서 달라진 환경을 주도할 방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환경'은 여전히 금강산 관광 재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북제재와 이에 대한 대미 협의 등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풀이된다.

현재 관광은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려면 시설 개보수가 필요해 제재에 저촉되는 각종 자재 등이 북한에 반입돼야 한다.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촉발된 신변안전 보장 문제, 제재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에 대한 여론 등은 국내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관광사업에 대한 북한의 발전 전략 등도 달라진 환경이라고 보고 있다"는 이 대변인의 발언에서 보듯, 금강산을 '국제관광문화지구'로 개발하겠다는 북측 구상을 고리로 북한을 설득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시설 철거'를 고집하며 남측에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한다면 정부의 구상도 기회를 잡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북한에 보낼 답신 내용과 대응 시나리오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측 통지문이 왔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답신을 마냥 지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악의 경우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거는 할 수 있지만, 금강산을 매개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전환해보려고 하는 그런 시도를 북한도 할 것"이라며 "(정부가) 미국도 더 설득하고 종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이날 통지문에서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하라고 요구한 것에서 보아 정부 자산인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가 철거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금강산 지역에는 북한이 2010년 몰수한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대, 문화회관, 온천장, 면세점 등 정부 및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자산과 동결한 금강패밀리비치호텔, 금강펜션타운, 해금강호텔 등 민간 소유 자산이 있다.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