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 징역 23년·친모 징역 6년 법정구속…"살인 고의 충분"

혐의 부인→자백→부인에 "자백 내용 신빙성 높다" 판단

선고 후 "살인할 사람 아니에요" 항변…시민들 "살인죄 적용 다행"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자녀 3명 중 첫돌도 지나지 않은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른바 '원주 3남매 사건'의 피고인인 20대 부부에게 2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은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고의성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판단, 이들 부부에게 중형을 내렸다.

피고인들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점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이를 비롯한 여러 정황을 토대로 살인의 고의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 살인 무죄→유죄…친부 징역 23년·친모 징역 6년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박재우 부장판사)는 3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황모(27)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아내 곽모(25)씨에게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다.

또 황씨에게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으며, 두 사람에게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각 10년과 5년간 아동 관련 기관에 취업제한 등 보안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피고인의 친자녀들"이라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 친부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들의 생명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곽씨에 대해서는 "황씨가 소리에 민감하고, 충동조절장애가 있음을 알면서도 '별일 없겠지'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며 "엄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씨는 2016년 9월 원주 한 모텔방에서 생후 5개월인 둘째 딸을 두꺼운 이불로 덮어둔 채 장시간 방치해 숨지게 하고, 2년 뒤 얻은 셋째 아들을 생후 9개월이던 2019년 6월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수십초간 눌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내 곽씨는 남편의 이 같은 행동을 알고도 말리지 않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가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황씨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죄를 인정했다.

◇ "후련하다" 범행 자백…유죄 판단 결정 증거 작용

재판부는 황씨가 검찰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점에 주목했다.

황씨는 혐의를 부인하다가 검찰에서 4번째 조사를 받으면서 "둘째 딸이 울기 시작해서 이불을 덮자 울음이 작게 들렸다"며 자백했다.

이후 "자백하니 속이 후련하다"는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으나 재판에 넘겨진 이후에는 진술을 뒤집어 다시 범행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과 법정 진술이 상반되는 경우 법정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면 신빙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이불이 덮여 사망했다는 사실은 황씨가 자백하기 전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었다"며 "해당 진술은 일관되고 흐름이 자연스러우며 모순을 찾기 힘들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구체적인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인의 고의성에 대해서는 황씨가 소리에 민감하고, 충동조절장애를 앓아 둘째 딸이 시끄럽게 울면 전신을 이불로 덮었던 행동을 반복했던 점을 근거로 미필적으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봤다.

셋째 아들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도 자백 내용이 일관되고 모순을 찾기 힘든 점 등에 더해 법의학자의 의견과 "막냇동생이 울 때마다 아빠가 목을 졸라 기침을 하며 바둥거렸다"는 첫째 아들(5)의 진술을 종합해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남편의 이런 행동을 알았음에도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곽씨의 아동학대치사 혐의도 유죄 결론을 내렸다.

◇ 엄벌 진정서 400여 통…시민들 "살인죄 적용 다행"

곽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되자 "(남편은) 살인할 사람은 아니에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황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교도관에 끌려가며 아내와 이야기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달 초 생후 16개월에 불과한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를 엄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일면서 이날까지 원주 3남매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에도 엄벌을 탄원하는 진정서 400여 통이 들어왔다.

이날 선고 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법원 앞에서 엄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한 회원은 "살인죄가 적용돼 정말 다행스럽다"며 "형량이 23년이라는 것이 과연 높은지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지만, 앞으로 이런 사건들에 대한 판결들이 아동학대가 점점 사라지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어린 남매를 키운다는 한 방청객은 "검찰 구형만큼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절대적 약자인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해 살인을 인정해준 덕에 아동 인권이 조금이나마 기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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