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 공식 제안했지만 엇갈린 97그룹…공동선언 불발 관측

이재명계, 공식 대응 아꼈지만…"혁신한다더니 정치공학 궁리만" 견제구

컷오프 D-7…양강양박 '李 책임론·사법리스크' 놓고 신경전도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한주홍 정수연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의 당권행을 저지하기 위한 비이재명계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누가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하든 본선에서 단일화하기로 미리 약속해두자는 공식 제안이 나오면서 '8·28 전당대회' 판이 술렁이고 있다.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 주자인 강병원 의원은 21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고문을 제외한 7명 후보끼리 '본선 단일화 공동선언'을 하자고 했다.

그는 "누가 본선에 진출해도 1명의 후보로 단일화하고 단일 후보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이 고문을 일찌감치 '공공의 적'으로 못 박고 세(勢)를 규합하자는 것으로, 반명(反明) 전선을 선명하게 형성해 '이재명 대세론'을 흔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컷오프를 일주일 앞두고 나온 '사전 결의' 제안에 나머지 후보들은 동상이몽하는 분위기다.

단일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강도'는 물론 단일화 '시점'을 두고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당장 97그룹 재선 4인방(강병원·강훈식·박주민·박용진) 내부에서조차 온도 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박주민 의원은 이날 재선의원 모임 주최 토론회에서 "단일화가 논의되려면 가치나 당의 혁신 방향 등에 있어서 접점이 있어야 한다"며 '비이재명 단일화'에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취재진과 만나서도 "시점을 못 박고 무조건 (단일화를) 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먼저 명분이 인정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강훈식 의원도 별도 입장문을 내고 "예비경선 기간은 단일화 논의보다는 후보들의 비전을 보여줄 시간"이라면서도 "컷오프 이후 단일화 논의에는 열려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86그룹 대표 주자인 김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금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컷오프 전 단일화'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며 "중앙위원의 선택(예비경선)까지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도"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면 박용진 의원은 '혁신단일화 공동스크럼,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은 이미 끝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강병원 의원의 제안에 화답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는 쇄신의 대상이라는 점이 더 명확해졌다"며 "모든 당 대표 후보들의 '혁신 단일화 공동스크럼'으로 결실을 보자"고 말했다.

이낙연계 주자인 설훈 의원도 통화에서 "이재명을 제외한 후보들끼리 컷오프 전에라도 단일화 약속을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며 동참 의사를 밝혔다.

주자들 간 이견에 '단일화 약속' 공동선언은 사실상 현실화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비이재명계 일각에서는 단일화 논의 물꼬를 빨리 틔운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 관계자는 "본선도 아니고 컷오프 전부터 단일화를 약속하는 것은 애당초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강병원 의원도 몰랐을 리 없다"며 "다만 이재명 대 반이재명이라는 대립 구도를 뚜렷하게 해서 표를 결집하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고문 측은 공식 대응은 삼갔지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이재명계 인사는 통화에서 "대선도 지방선거도 아니고 당내 선거에서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건 20년 넘게 정치하면서 본 적이 없다"며 "행태가 참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머지 주자들 각자 지지기반이 다 다르다. 그들끼리 단일화 해봐야 각자 지지율이 다 플러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단일화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혁신을 들고 나온 97그룹 주자들이 막상 정치공학 궁리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당원들의 실망감만 더할 것"이라고 했다.

컷오프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비이재명 후보들 간 신경전도 후끈 달아올랐다.

97그룹 4인방만 대상으로 한 이날 재선의원 모임 주최 '당 대표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주자들은 '이재명 책임론' 등 주로 이 고문 관련 이슈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다.

강병원 의원이 친이재명계로 묶이는 박주민 의원을 향해 "왜 언론에서 이재명의 러닝메이트라고 하냐"고 따져 묻자, 박주민 의원은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나는 이기기 위해 나왔다"며 맞섰다.

이에 강병원 의원은 "(박주민 의원은) 특정인에게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지 말자고 하니 러닝메이트라는 오해를 받는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두고도 설전이 오갔다.

강훈식 의원은 강병원 의원을 향해 "전당대회에 쓰지 말아야 하는 용어들이 나오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사법 리스크라는 표현이 당 대표 후보자로서 적합하냐"고 지적했다.

이에 강병원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되면 우리 당이 신뢰를 회복할 수 없고 책임지지 않는 정당으로 낙인찍힌다"며 "그가 가진 리스크가 우리 당 전체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권발 '사법 리스크' 논란이 지도부 선거와 맞물려 당내로도 확산되는 데 따른 경고음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후 YTN 인터뷰에서 "당내에서 경선하는 분들이 동지에 대해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에서는 정치보복 수사라고 하는데 이것을 사법 리스크라고 얘기하면 앞뒤가 안 맞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goriou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