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엔 징집 피하려는 긴 탈출 행렬, 극단적 자해 시도도"

"자진해 훈련센터 향하는 사람도 많아…국영TV 선전전 먹혀"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지난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 이후 핀란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등 인접국 국경에는 소집을 피하려는 러시아인들의 차량 행렬이 긴 줄을 섰다.

하지만 러시아 전역에서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길을 떠나려 훈련센터행 버스에 자원해서 오르는 징집 대상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가디언은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장에 보낼 군인들을 보충하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예비역 동원령 이후 극명하게 엇갈린 징집 대상자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지난 28일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의 이르쿠츠크시에 사는 일리야가 퇴근했을 때 그의 부인은 징집 영장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리야는 곧바로 가방을 싸 다음 날 아침 지역 징병센터로 향했다.

26세의 버스 운전사인 그는 남부 도시 로스토프 인근의 훈련소에서 전화로 가디언과 인터뷰를 하고 "조국이 부를 때 당신은 응답해야 한다. 나는 징집을 피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리야 같은 젊은이들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두드러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현지 독립 여론조사 전문기관 '레바타 첸트르' 소장 데니스 볼코프는 지적했다.

그는 "동원령이 기존의 국가 분열을 더 심화시켰다"면서 "서구 지향적이고 더 현대적인 도시 인구 집단은 징집에 반대하면서 출국을 원하고 있는 반면, 징집을 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징집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수준이 낮고 더 가난하며 국가 의존적이라고 설명했다.

29일 공개된 레바다 첸트르의 여론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지지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은 동원령 이후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72%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볼코프 소장은 "전쟁이 시작됐을 때 (러시아) 사회는 단결했고, 그 경향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군에 대한 지지를 떠받치는 이론적 기반은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및 미국과 광범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일 가정에서 국영 TV를 통해 생산되고 있는 그러한 주장을 많은 사람이 견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징집을 피하고자 국외로 탈출하거나 자신의 몸을 훼손하는 더 극단적인 방법까지 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된 한 영상에는 동원 대상이 된 러시아 예비군의 팔을 그의 친구가 큰 망치로 내리쳐 부러뜨리는 끔찍한 모습이 담겼다.

역시 징집 대상이 된 자기 친구의 다리를 한 남성이 계단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날려 점프해 가격하면서 부러뜨리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올라왔다.

징집을 피하려고 분신을 시도하거나 소집센터에서 가까운 곳에서 군 지휘관에게 총격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동시에 징집을 회피할 경우 10년의 징역형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집 센터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징집 영장을 받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이고리는 "나도 싸우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숨어지낼 순 없다. 닥쳐오는 일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한편,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 이후 최소 20만 명의 러시아인이 자국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