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마트서 우유·훔쳐, 주운 신용카드로 도시락 샀다가 덜미

경찰 "실제 신고보다 더 많을 것"…경미범죄심사위서 283명 감경 처분

즉결심판 처분받아도 형편 어려워 벌금 못 내…"사회적 약자 위한 제도·관심 더 필요"

(창원=연합뉴스) 이준영 기자 = 고물가와 경기 침체 등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잇따른다.

이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민관에서 돕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6일 오후 경남 밀양에 사는 70대 A씨가 마트에 들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던 A씨는 우유와 아몬드 등 1만7천원어치를 훔쳐 몰래 빠져나왔다.

마트 주인은 재고 정리를 하다 물품이 빈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독거노인으로 마땅한 소득 없이 생활하다 배가 고파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에는 창원에 사는 50대 B씨가 길에서 주운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음료수 등 5만원어치를 샀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B씨는 먹을 것이 필요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과 같은 범죄가 실제 신고 건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본다. 피해자가 딱한 사정을 듣고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같은 범죄에는 엄격한 처벌 잣대를 대기보다 선처를 통한 교화를 택한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총 70번의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열어 대상자 291명 중 283명을 감경 처분했다.

이 중 형사입건된 236명 중 229명이 즉결심판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55명 중 54명이 훈방 조처됐다.

A씨와 B씨도 생계형 범죄인데다 동종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된 점을 참작 받아 모두 즉결심판에서 훈방으로 감경됐다.

강봉균 경남경찰청 생활질서계장은 "경기가 안 좋을수록 소액 생계형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며 "범죄자를 조치하는 건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몫이다. 종합적인 사정 등을 고려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도 경찰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즉결심판 처분을 받더라도 형편이 계속 어려워 벌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무이자로 벌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15명이 대출 신청을 해 115명이 도움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생계형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와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무전유죄라 할 때 죄가 있다는 한자어 유(有)를 쓰지만 돈 없는 상황이 죄를 짓게끔 유혹한다는 꾈 유(誘)라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며 "빈곤 자체가 범죄와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상은 국가가 나서야 할 영역이다. 빈자에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j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