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 잃고 거리 무너진 주민 '동사하거나 아사하거나'

수없이 무너진 건물…튀르키예서만최소 6천500채

WHO "물·연료 부족…강진 자체보다 많은 사람 해칠 수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서부를 거대한 폐허더미로 바꿔놓은 규모 7.8의 대지진으로부터 나흘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생존자들은 여전히 추위와 굶주림, 절망에 시달리고 있다.

2살 아기가 매몰 79시간 만에 구출되는 등 곳곳에서 기적적 구조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잔해 아래 깔린 사람들의 인기척이 잦아들면서 희망도 꺼져가는 모양새다.

피해 규모가 광범위해 신속한 구호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 탓에 현지에선 살아남은 이들 중 상당수가 추위와 기아, 질병 등 2차 피해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피해지역에는 때아닌 추위가 몰아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지역 기온이 평년보다 크게는 15도 낮은 상황이라면서 이로 인해 이번 참사로 인한 인명피해가 더욱 커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WHO의 지진 대응 담당자인 로버트 홀든은 9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많은 생존자가 끔찍하게 악화하는 상황 속에 야외에 머물고 있다"면서 "물과 연료·전력·통신 등 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들의 공급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최초 재해보다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2차 재해가 발생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강진의 진앙에 위치한 튀르키예 동남부 도시 카라만마라슈에선 전체 건물의 약 40%가 파손됐다. 튀르키예 당국은 자국 내 건물 6천500채가 붕괴했고, 손상된 건물의 수는 셀 수조차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건물들도 강력한 진동에 골조 등이 손상됐을 우려가 큰 실정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진까지 이어지면서 피해지역 주민 다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야외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천막을 치거나 스포츠 경기장 등에 마련된 임시숙소에 머물고 있지만, 상당수는 노숙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아흐메트 톡괴즈는 AP 통신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피해지역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피난시켜야 한다면서 "이런 추위 속에선 여기서 살 수가 없다. 잔해에 깔려 죽지 않는다면 추위에 죽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료품과 약품 등의 공급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 하타이 주의 주도 안타키아에선 어린이 외투와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트럭이 도착하자 순식간에 주민 수십 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12년 넘게 내전 중인 시리아 지진피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쟁으로 약화한 건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사람들을 덮친 데다 반군이 장악한 북서부 지역에 피해가 몰려 있다는 이유로 시리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구호활동을 막고 있어서다.

주유엔 시리아 대사는 9일 이번 참사에 대응할 역량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오랜 내전과 서방의 대시리아 제재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이들리브로 피신한 네 아이의 어머니 무니라 모함마드는 "여긴 모두 어린이들만 있고, 우리는 난방과 물자가 필요하다. 지난밤에는 너무 추워서 우리 모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건 정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시리아 주민 중 일부는 튀르키예-시리아 국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로 향하기도 했다.

데이르 발루트 지역 난민 캠프에서 외신 기자들을 만난 시리아 여성 두아 가드반(21)은 휴대전화기 속 아기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다 연신 입을 맞췄다.

그는 붕괴한 건물에 묻혔다가 수 시간 만에 구조됐지만, 남편과 아기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발견 당시 남편은 생후 40일 된 아기를 꼭 끌어안은 채 숨이 멎어 있었다.

추위에도 맨발을 드러낸 가드반은 "그들은 함께 매장됐다. 남편은 그(아기)를 결코 품에서 놓지 않았다"면서 "난 아직도 내가 잔해 밖에 나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여전히 잔해 아래 갇혀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AFP 통신은 시리아 난민 캠프는 천막촌인 까닭에 강력한 진동에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서, 가드반처럼 머물 곳이 없거나 여진이 두려운 주민 상당수가 난민 캠프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그런 이들 중 한 명인 가야스 자르주르는 "작은 방에 30명이 난방이나 담요조차 없이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내전으로 이미 한 차례 터전을 잃고 잔다리스로 이주했다가 이번 지진으로 또다시 집을 잃었다는 그는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유랑자 신세가 돼왔다. 오늘도 역사가 반복됐다"고 한탄했다.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