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초목 탓 큰불 난다' 2년 전부터 나온 경고에 뭉그적

실종자 아직 1천300명…"관리됐다면 피해 크게 줄였을 것"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하와이에서 발생한 산불 참사가 결과적으로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공터를 가득 메운 외래종 초목 때문에 큰 불이 날 수 있다는 경고가 오래전부터 나왔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하와이 마우이 정부위원회는 2021년 7월 외래종 풀 때문에 하와이가 화재에 취약해지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특히 버려진 사탕수수밭을 메운 외래종 식물을 지목하며 불이 잘 붙고 순식간에 타버리는 연료라며 대책 마련을 당국에 권고했다.

하와이에서는 과거 사탕수수 농장들이 있던 큰 규모의 땅이 산업 쇠퇴 이후 당밀풀, 키쿠유풀, 수크령 등 외래종에 점령됐다.

이들 식물은 토종 식물보다 더 쉽게 불이 붙고 더 잘 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소속 생태학자 케이티 카멀라멀라 교수는 하와이섬 4분의 1을 외래종 초목이 뒤덮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래종 초목은 라하이나를 비롯한 서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라하이나는 이번 산불의 주요 피해지역으로 약 80%가 초토화했다.

전문가들은 하와이 당국이 외래종 초목에 대한 경고를 사실상 묵살했다고 지적한다.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 소속 생태계 전문가 클레이 트라우어니히트는 "라하이나 주변 땅은 186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모두 사탕수수였다"면서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외래종 풀 및 화재 위험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외래종 초목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면서 당국이 토지를 관리해왔다면 산불 상황이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축 방목이나 농업 등으로 잡초를 줄였다면 화염의 강도를 낮추고 불이 번지는 속도도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잡초를 태우며 번진 화염은 강도가 너무 세고 비화가 너무 빨랐다. 주민이 대피할 시간이 아예 없어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된다.

급하게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구사일생 증언이 쏟아지는가 하면 수습된 시신 대다수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다.

하와이 주지사 조시 그린은 지난 8일 시작된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총 11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통신이 일시 복구되면서 집계된 실종자 수는 2천 명에서 줄어들긴 했으나 1천300명에 달한다.

가디언은 외래종 식물의 위험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만큼 이번 화재는 예고된 참사와 다름없었다는 게 과학자들 지적이라고 전했다.

hanj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