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결산] 말말말

말에는 오묘한 힘이 있다. 비수처럼 날카롭게 벼린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만, 따뜻한 격려가 담긴 한마디는 누군가를 절망에서 일으켜 세운다.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말 한마디 때문에 출렁이는 일이 적지 않다. 올해도 기쁨과 위로를 주고,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내며, 시대의 방향을 가늠했던 말이 있었다. 한 해 동안 주목받았던 발언을 모았다.

▣국내 인물

▲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겠다"(윤대통령, 1월 UAE 방문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며)

▲ "A long, long time ago…" (윤 대통령, 4월 미국 국빈 방문 만찬에서 부른 '아메리칸 파이' 한 소절)

▲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겠습니까? 국가권력 가지고 장난하면 그게 깡패지 대통령이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2월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그만두기로 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 1월 25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며)

▲ "와이프하고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한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 10월 24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박진 외교부 장관, 일제 강제징용 해법 발표 기자회견에서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없는 '반쪽' 해법이라는 비판에 답하며)

▲ "여의도에서 300명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나는 나머지 5천만 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최근 한 장관의 화법이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견해가 있다릫는 기자들 질문에 답하며)

▲ "이런 부당한 탄핵은 그만둬야 합니다. 그래도 탄핵하겠다면 검사들을 탄핵하지 말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책임진 저를, 검찰총장을 탄핵하십시오" (이원석 검찰총장, 11월 9일 서초구 대검 청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정섭·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반발하며)

▲ "어려울 거라고는 예측했지만 이렇게 많은 표 차가 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방문규 산업통상부 장관,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답하며)

▲ "'갓생'은 정답이 없다. 본인이 원하는 가치에 달려있을 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생산적이고 계획적인 바른 생활을 실천한다는 뜻을 담은 MZ세대 유행어 '갓생'을 언급하며)

▲ "살아남은 교사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대전교사노조 추모사, 9월 15일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대전 교사 추모 행사에서)

▲ "웃다가 (조사가) 끝났습니다"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 11월 6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소환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주로 어떤 부분을 조사받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며)

▲ "친이도, 친박도, 친노도, 친문도 모두 다 권력에 빌붙은 하루살이였다" (홍준표 대구시장, 수해 골프 논란으로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받자 8월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다. 수많은 선수와 같은 '선수 안세영'이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뒤 광고, 방송 출연 제안을 사양하며)

▲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 (김영환 충북지사, 3월 7일 SNS에서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라고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발언을 비난하면서)

▲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하나"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10월 20일 국회의 부산고법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1심 재판부가 가해자 반성문 제출 등을 형량 감경 사유로 인정한 것을 비판하며)

▲ "우리 멤버들 다 또라이다. 미친놈들만 가득 있어서 독기가 장난이 아니다" (방탄소년단 뷔, 데뷔 10주년을 맞아 7월 9일 발간한 첫 공식 인터뷰집에서 멤버들의 열정을 평가하며)

▲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한 것이라 뼈저리게 느꼈다" (가수 윤도현, 8월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암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 "재물욕이 인간의 실존적인 실체를 밝히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인간사 비극의 80~90%가 돈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이다" (작가 조정래, 11월 2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장편 '황금종이'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집필 취지를 설명하며)

▣국제 인물

▲ "여성들이여,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 (말레이시아계 배우 양자경,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에서)

▲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6월 24일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 직후 TV 연설에서)

▲ "나는 머그샷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 와튼스쿨에서는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미국 역대 전·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최초로 형사기소돼 조지아주 검찰에 출석, 머그샷을 찍은 뒤 미국 보수 매체 뉴스맥스와 인터뷰에서)

▲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 (고(故) 리커창 전 중국 총리. 3월 2일 중국 국무원 판공청 직원 800여명에게 퇴임 작별인사를 하면서)

▲ "매워서 머리가 터질까. 머리가 남아 있을까" (영국 찰스 3세 국왕. 11월 8일 영국 뉴몰든 한인타운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치를 선물 받은 뒤)

▲ "우리는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를 잊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7월 20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방중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미중 관계 발전을 위한 공헌을 치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