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개혁' 공약…민주,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 발의…'판사 평가' 법관평가위원회 도입
'헌재가 법원 판결 심사' 재판소원 허용될까…조건부 석방·압수수색 사전심문제도 공약
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사법부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 후보는 대법관을 늘려 상고심 적체를 해소하고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거나 조건부 구속영장제·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등을 도입하는 등 사법 제도 일대 변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에서 '내란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일환으로 사법개혁 관련 정책을 여럿 제시했는데 이 중에는 대법관 증원도 공약으로 포함됐다.
대법관의 숫자는 입법 사항이다. 법원조직법에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고 정해져 있다. 이중 실제 상고심 심리에 관여하는 것은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이다.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는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경우 1인당 연평균 약 4천 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1년에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 본안사건은 4만∼5만건에 달한다.
'심리불속행 기각 등 상고를 기각하면서도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줄어 국민의 사법 접근성이 개선되는 동시에 1인당 사건 수가 줄어 대법관들이 치열한 법리적 쟁점이 있는 재판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30명이 숙의를 통해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공법(公法)·사법(私法)이나 또는 민사·형사·특별(가사 및 행정 등) 등 사건의 범주에 따라 분리형 전원합의체를 운영하는 방안도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는 복수의 연방최고법원이 있는 독일식 모델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상고제도 개선 문제는 사법 구조와도 밀접히 연관된 '고차 방정식'으로 통한다.
이는 헌법이 규정한 사법부의 역할뿐 아니라 국민의 요구까지 고려해 국민의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면서도 '법령의 통일적 해석을 통한 법적 가치 기준 제시'라는 대법원의 규범적 역할을 달성해야 한다는 문제가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후보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으로 새로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합 판결 이후 민주당이 사법개혁론을 본격적으로 꺼냈다는 점을 들어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인 이 후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대법관 대거 증원을 두고 '사법부 길들이기' 성격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헌법재판소 위상과 운영에 변화를 가져올 '재판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재판소원은 법원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제도다. 공약집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민주당 의원들이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현행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헌재 안팎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 소원이 '뜨거운 감자'로 통했다.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 등으로 법원 법률 적용의 위헌성을 지적하더라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건 당사자들이 오랜 기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문제가 반복됐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김형두 소장대행이 이끄는 헌재는 지난달 15일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소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청구 요건 제한 등 다양한 부가 조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판소원 도입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엇갈려왔다.
헌법학계 등 헌재 안팎에서 헌법소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헌재가 대법원의 판결까지도 평가하는 위상을 갖게 된다는 상징적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원론적으로 이 후보의 법원 판결도 재판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역대 헌재소장의 경우 이강국 전 소장은 재판소원보다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 판단을 구하는 추상적 규범통제가 헌재 인력이나 여건상 낫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남석 전 소장의 경우 판사 시절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논문을 썼으나 이후 소장 청문회에선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정책적으로 여러 장단점을 고려해 판단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종석 전 소장과 문형배 전 소장대행은 청문회 때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내용의 헌재 합헌 결정이 존중돼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헌재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다만 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초래하며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입장이다.
재판소원으로 헌재의 사건 수가 폭증할 경우 헌법재판관에 대한 증원 논의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재판관 정원은 헌법에 명시돼 있어 늘리려면 개헌이 필요하다. 헌재에는 한해 2천∼3천여건의 사건이 접수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고 인력이 적은 헌법연구관 보강도 필요하다.
이밖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특정 제한 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는 '조건부 석방제', 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기에 앞서 관련자를 불러 심문할 수 있도록 하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도 이 후보의 공약 사항이다.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고 법관평가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도 이 후보 임기 중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wat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