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로 물갈이' 이후 케네디센터 첫 방문…멜라니아 동반
불법이민 단속 저항 시위 격화 속 보란듯 대외 행보
"대통령께서는 장발장과 형사 둘중 어느 쪽에 가까우신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여보, 당신이 대답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DC 케네디센터를 찾아가 레드카펫에 섰다.
이날 개막한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을 관람하러 영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방문한 것이다.
검정 턱시도 차림에 나비 넥타이를 맨 트럼프 대통령은 공연 전 레드카펫에 서서 검정 원피스를 입은 멜라니아 여사의 손을 잡은 채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 몇분에 걸쳐 질의 응답을 했다.
특히 한 취재진의 송곳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답을 내놓지 않기도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취재진 사이에서 "장발장에 더 가까운가요 아니면 자베르(극중 장발장을 추격하는 형사)에 가까운가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 이건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웃어보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더니 옆에 있던 멜라니아 여사를 돌아보며 "여보, 당신이 대답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난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같은 질문이 나온 정확한 맥락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이날 케네디센터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에는 시종일관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컴백하자마자 문화계까지 보수적 색채를 덧씌우는 이른바 '이념 전쟁'의 칼날을 뽑아들고 특히 공연계 상징과도 같은 케네디센터를 정조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케네디센터 이사회의 진보성향 이사들을 해촉하는 동시에 자신을 직접 이사장에 '셀프 임명' 했으며, 이 여파로 기존 케네디센터 공연이 뒤바뀌는 등 문화계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케네디센터를 방문한 것은 2기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특히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민중 봉기를 다룬 '레미제라블'을 관람한다는 점에서 '역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미 일간 가디언은 짚었다.
워싱턴DC 반대편인 미 서부 대도시 LA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에 맞서 연일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이를 진압하려 군대까지 투입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공연장인 오페라하우스에 입장한 순간에는 이같이 갈라진 미국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CNN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객석에 등장하자 한쪽에서는 "범죄자", "엿먹어라"라는 비난과 야유가 이어졌으며, 다른 쪽에서는 "USA"를 연호하며 함성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해 '레미제라블' 출연진 중 일부는 보이콧을 선언했으며, 그와 대척점에 서 온 성소수자들도 이날 저항의 의미로 여장 남자인 '드래그퀸' 복장을 한 채 무더기로 오페라 하우스에 입장하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레미제라블'에 대해 "아주 멋지다. 여러번 관람했다"고 호평을 한 바 있다. 또한, 대선 유세에서 이 작품의 일부 삽입곡을 배경 음악으로 쓰기도 했다.
이날 레드카펫에는 JD 밴스 부통령, 케네디 주니어 보건장관 등 '트럼프 사단'이 총출동했으며, 마치 할리우드 시사회를 연상케 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촌평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색채'를 씌운 여파로 케네디센터는 티켓 판매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케네디센터의 다음 시즌 구독 매출은 6월 현재 전년보다 36% 급감한 280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newgla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