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부추기려는 자작극 의심"이라 공표→수사 결과 투표사무원 실수

"명예훼손·손해배상 민형사 소송 가능성…무효표 선거권 침해도 문제"

지난 대선 당시 경기 용인시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기표 용지가 들어 있는 회송용 봉투가 배부된 사건이 투표사무원의 실수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섣부른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선관위는 문제를 제기한 투표인에 대해 "자작극"이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했는데,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결과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투표인의 명예를 훼손한 셈이 됐다.

18일 경기 용인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7시 10분께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에게 나눠준) 회송용 봉투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반으로 접힌 채 나왔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수사 결과 이번 사건은 투표사무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 것으로 드러났다.

A씨에 앞서 투표한 B씨가 사무원 실수로 회송용 봉투를 2장 교부받았다가 1장을 반납하는 과정에서 기표된 용지가 봉투 안에 들어갔고, 이것이 다시 A씨에게 전해지며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사건 4시간여 만인 당일 오전 11시 26분께 자초지종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입 기자단 등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해당 선거인이 타인으로부터 기표한 투표지를 전달받아 빈 회송용 봉투에 넣어 투표소에서 혼란을 부추길 목적으로 일으킨 자작극으로 의심돼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공지했다.

'의심'을 덧붙여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A씨가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선거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이라는 다소 비난적인 추론을 주무 기관이 진상 확인도 없이 공표한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명예훼손은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구체적 내용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할 경우 성립하는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선관위의 공지는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강물 양효중 대표변호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임에도 지레짐작으로 판단해 자작극이라 발표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소송과 더불어 파생된 손해에 대한 민사적 배상 책임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해당 표현이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거나, 당시 선관위가 전후 사정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정황이 소명될 경우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는 "보기에 따라 명예훼손뿐 아니라 무고 혐의도 다퉈볼 수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며 "선관위가 A씨를 자작극으로 의심할 때 이것이 허위임을 알았을 가능성은 작지만,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수사 의뢰가 이뤄진 만큼 일부 구성요건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A씨의 신고로 회송용 봉투 안에 있던 B씨 기표 용지가 공개되며 최종 무효표 처리됐는데, B씨 역시 투표사무원의 실수로 말미암아 선거권을 침해당한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

성복동 사전투표소 현장 참관인들은 대선 하루 전인 지난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관위의 미흡한 대응과 관리를 질타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참관인 C씨는 "현장에 있었던 사건 목격자로서 A씨의 결백함을 증언한다"며 "A씨는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받아 들고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봉투 안을 살짝 본 뒤 투표 사무원에게 사실을 알린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잘못하고도 적반하장으로 선량한 국민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선관위의 행태를 고발한다"고 덧붙였다.

C씨 등은 같은 날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발했다.

(용인=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sto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