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담판(談判. 말씀 담 판가름할 판)은 서로 맞선 관계에 있는 쌍방이 의논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접사 -하다를 붙여 [담판하다] 합니다. 담판을 내다, 짓다, 벌이다 꼴도 씁니다. 담판은 '담'보다 '판'입니다. '담'하여 '판'한다는 쪽이지 '판'하려고 '담'한다는 쪽이 아닙니다. 회담이나 회의인 양 쓰지 않습니다. 예문을 봅니다. 그는 적장과 휴전 문제를 담판하기 위해 적진으로 갔다 / 소작인들은 지주와 소작료에 대하여 담판하였다 / 나는 직접 찾아가서 주인과 담판하는 외에는 별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들은 직접 만나 소유권 문제를 담판하기로 약속했다 /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담판하기로 했다. 한 언론기사문에서 '두 정상이 담판을 갖는다' 합니다. 두 정상이 담판한다, 담판을 벌인다/낸다/짓는다 하고 바꿔 쓰는 게 낫습니다.

자문(諮問. 물을 자 물을 문)은 […에/에게 …을] 꼴로 쓰여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묻는 것을 뜻합니다. 풀이가 깁니다. 짧게 '묻는다'로 기억합니다. 이 문제는 전문가에게 자문합시다 / 그 기관에 집값 안정 대책을 자문하다 / 그 회사는 유명한 경제 전문가에게 매사를 자문한다 합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식으로 쓰는 경우를 봅니다. 난감합니다. 대답이면 모를까 물음을 구한다니요? 그 전문가는 점잖게 말합니다. "제게 자문을 구하시다니요? 말법에 어긋납니다. 제가 자문에 응하겠습니다." [자문하다]는 물어서 의견을 구한다는 뜻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에/에게 자문하고, …을 자문하고, …에/에게 …을 자문한다고 쓴다는 것도요.

사사(師事. 스승 사 섬길 사)는 스승으로 섬긴다, 또는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자가 의미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는 전처만을 외경했을 뿐만 아니라 전처만을 사사했다 (박완서/미망) / A는 B에게 시를 사사했다 / C는 D에게 바둑을 사사했다 하고 씁니다. 전처를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겁니다. A는 B한테 시를 배웠고요. C는 D의 가르침으로 바둑을 익혔습니다. 스승으로 섬긴다는 뜻일 때는 문제 없지만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일 때 쓰임에서 더러 혼선을 빚습니다. 전문가 E를 사사했다 하지 않고 전문가 E에게 사사(를) 받았다 하는 겁니다. 원칙적으로 앞엣것을 쓰는 게 어법에 맞고 경제적이기도 합니다. 한자로 된 말이 과속방지턱처럼 턱 하고 걸릴 때가 있습니다. 쉬운 말로 속도를 낮춥니다. 그게 좋은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