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시간대 녹화분 돌려봐…상황 오판 대대장 보고도 없이 종결

합참, 탈북민 월북사건 전비태세검열 결과 발표…군 "국민께 송구"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정빛나 기자 = 탈북민이 지난 1일 강원도 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장면이 군의 GOP(일반전초) 감시카메라(CCTV)에 다섯 차례나 포착됐지만, 감시경계 병력이 이를 모두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군은 최전방부대 경계 태세에 허점이 드러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육군 22사단 GOP가 관할하는 지역 철책을 넘어 육로를 통해 월북한 A씨가 월책하는 장면은 GOP 내 감시카메라 3대에 모두 다섯 차례 포착됐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조사 결과 A씨가 당일 오후 6시 36분께 GOP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에 경고음이 울렸고, 소대장 등 병력 6명이 출동했으나 이들은 현장에서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쳤다.

GOP 감시병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CCTV 영상에서도 A씨가 철책을 뛰어넘는 장면을 상황 발생 당시 인지하지 못했다.

감시병들은 당시 CCTV 카메라에 식별된 물체가 매우 흐릿한데다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 발생 등의 문제로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군의 GOP 감시카메라 3대에는 A씨가 남쪽 철책을 기어오르고 넘어가는 장면, 북쪽 철책을 넘어 갈대밭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잡혔다. 그러나 해당 부대는 이후 녹화된 영상을 재생했을 때도 A씨가 철책을 넘어 월북한 사실을 또 놓쳤다.

녹화영상 재생 시 저장 서버에 입력된 시간과 실제 촬영 시간이 차이가 나 월책하는 장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특이상황이 아니라고 오판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이 철책을 넘어간 시간의 영상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엉뚱한 시간대의 영상을 돌려보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근무 지침상 하루 두 차례 장비의 시간을 서로 맞추는 동기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4분가량 (서버에 기록된 시각과 실체 촬영 시각 간) 차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해당 초소에서 CCTV 메인 서버와 저장 서버의 시간을 모두 동기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메인서버만 작업을 한 바람에 서버들의 시간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장비 작동상의 문제점은 이번에 월북 사건이 일어난 뒤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해당 대대의 지휘통제실장은 경계 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자체적으로 상황을 종료한 뒤 상급 부대와 대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참 관계자는 "특이사항이 없더라도 매뉴얼상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월북자는 지난 1일 낮 12시 51분께 민통초소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돼 경고방송이 이뤄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합참 관계자는 "(방송을) 듣고 마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민통초소를 우회해 GOP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22사단의 해당부대는 A씨가 철책을 넘은 지 2시간 40여 분이 지난 2일 오후 9시 17분께야 비무장지대(DMZ) 내 미상의 인원을 열상감시장비(TOD)로 식별, 특이상황 발생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군 당국은 경계태세에 허점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전동진 합참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월북상황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완대책을 마련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합참은 별도로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군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절치부심의 자세로 현장 작전부대 장병들이 대비태세를 확고히 하고, 임무 수행에 능력과 체계를 조기에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