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교 관계 아르메니아 구호의 손길…35년만에 국경 개방, 양국 외교관계 회복 잰걸음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대학살'갈등으로  30년전 단교
아르메니아 장관, 튀르키예 수도 전격 방문
'불편'이스라엘·그리스 등도 화해의 휘파람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외교 수장이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만났다.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아르메니아를 두고 우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100년 앙숙' 관계인 두 나라가 4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강진을 매개로 손을 잡았다. 바로 '지진 외교'다.

대지진으로 역대급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를 향해 전 세계가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그간 튀르키예와 갈등을 빚어온 국가들까지 구호에 적극 동참하면서 외교 관계 개선 조짐이 나타나는 등 ‘지진 외교’의 새 장이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무장관과 아라랏 미르조얀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이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경 개방을 포함해 양국 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양국은 관련 회담을 진행 중이라 설명했다.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장관은 “아르메니아는 어려운 시기, 우리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어 연대와 협력을 보여줬다”면서 “이 연대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르조얀 아르메니아 장관도 “튀르키예와 완전한 관계 정상화 및 국경 개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경을 맞댄 두 나라는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계기로 100년 이상 갈등을 이어온 앙숙 관계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이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살해·추방한 사건을 말한다.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와 전쟁 중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기 위해 1993년 아르메니아와 단교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는 대지진이 발생한지 5일 만인 지난 11일 파격적으로 국경을 개방했다. 육로를 통해 튀르키예로 구호품이 전달될 수 있게 돕고 나선 것이다. 100t에 달하는 식량과 의약품, 물 등 구호품을 실은 화물차 5대가 아르메니아의 알리칸 국경 지점을 통과했다. 아르메니아는 생존자 수색을 돕기 위해 튀르키예에 27명의 구조대도 파견했다.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반목 중이던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호전 중이다. 양국 외무부 장관을 기자회견을 갖고 “이스라엘 구호대가 19명을 구조했다”며 “두 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양국은 항공 직항편을 재개하기로 했다. 주요 이스라엘 항공사가 조만간 튀르키예에 취항할 예정이다. 이스라엘과 튀르키예는 지난해 8월 외교 관계를 복원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인 튀르키예에선 반(反) 이스라엘 시위가 이어지는 등 감정의 골이 깊었다.

‘에게해의 영원한 앙숙’인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관계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나라는 지중해의 작은 무인도인 이미아섬(튀르키예명 카르다크섬)을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갈등해왔다.

그리스는 튀르키예 강진 발생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색·구조 특수팀을 급파하고 군용 화물기로 구호품과 의료용품 등을 보냈다. 그리스 시민단체들도 기부금을 모아 구호에 나섰다.

'시리아'퇴출시켰던 
아랍연맹, 지원 훈풍

튀르키예 뿐만 아니다. 지진 피해가 큰 시리아와 아랍국가 간에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 중이다. 아랍연맹(AL)은 지난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를 퇴출했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일부 회원국은 시리아와 단교했다. 하지만 대지진이 일어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14일 의약품 35t을 실은 항공기를 시리아 알레포에 보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공기가 시리아에 착륙한 건 내전 초기인 2012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요르단도 시리아 내전후 처음으로 외무장관을 보내 구호 지원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