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대출 꺼려 신용 경색에 따른 경기둔화 가능성

'연내 금리 인하 없다' 파월 발언에도 시장서는 7월 인하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잇따른 은행 파산 등 금융권 불안 사이에서 고민하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최근의 금융 불안에 대해 한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과 맞먹는 영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상단을 5.0%까지 끌어올린 뒤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경제상황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연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최근의 상황 전개는 가계와 기업의 신용 여건을 빡빡하게 만들고 경제활동과 고용, 인플레이션을 압박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영향의 정도는 불명확하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은행 파산이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은행권 사정이 얼마나 경제를 둔화시킬지 파악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한 차례, 혹은 그 이상의 금리 인상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 2주간 은행 시스템에서 일어난 일들이 가계와 기업의 신용 여건 경색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연준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기업의 대출 비용을 늘리고 경기를 둔화시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하는데,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붕괴에 따른 금융권 불안이 은행권의 대출 감소를 통해 금리 인상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파월 의장의 발언에 대해 "금리가 금융 환경을 빡빡하게 만들고 은행권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 은행권 위기가 금융 환경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해석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아마 (대출 등) 금융 여건이 전통적인 지표들이 가리키는 것들보다 더 빡빡해졌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로서는 어느 정도일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은행들이 대출을 꺼려 신용 경색을 촉발할 수 있다고 보면서 "얼마나 심각하고 지속할지를 볼 것이다. 중대한 거시경제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며 우리는 이를 정책 요인에 포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SVB 붕괴 등은 시스템적인 문제라기보다 은행의 경영 실패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미국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해 신뢰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최근의 사태는 연준의 일선 은행 감독업무에 실패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발언했다.

로이터는 이날 연준 성명과 기자회견을 볼 때 신용 문제에 대한 연준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추가로 쓰러지는 은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질서 있게 대출이 줄어들 경우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회사 아폴로의 토르스텐 스로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금융권 혼란은 기준금리 1.5%포인트 인상에 해당하는 효과를 냈다고 추산했으며, KPM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이앤 스웡크도 같은 의견을 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도 이미 경기후퇴 우려로 대출 여건이 빡빡해진 가운데, 최근 금융권 위기가 0.25∼0.5%포인트의 금리 인상에 맞먹는 영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은행권 불안으로 금리 결정에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파월 의장은 "시장이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연내 금리인하는 연준의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연내 인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다음 FOMC 회의가 열리는 5월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보는 견해(59.1%)가 0.25%포인트 인상 견해(40.9%)를 앞섰다.

7월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0.25%포인트 인하(46.8%)를 포함해 하락에 베팅하는 견해(59.3%)가 동결(34.8%)이나 0.25%포인트 인상(5.8%) 견해를 앞서고 있다.

파월 의장은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평가할 때 향후 나오는 자료와 경기 전망, 특히 신용 긴축과 관련한 실질적이고 기대되는 영향 평가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bs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