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시작점 삼은 안, 반대 66%로 IUG 소위원회 부결

기후변화부터 닭뼈까지 '격변' 뚜렷…"지질학계 부정해도 이미 대세"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지질학계가 '인류세'의 공식 도입을 거부했다고 CNN 방송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에 따른 지구 환경의 심대한 변화가 반영된 새 지질시대의 명칭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제지질학연합(IUG) 산하 제4기 층서 소위원회는 인류세 도입안을 6주 동안 논의한 끝에 반대 66%로 부결했다.

의결 정족수는 찬성 60%였는데 일부 기권표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급 회의체인 국제층서위원회가 IUG 규정에 따라 추가 논의를 이어가지 않기로 함에 따라 인류세 도입은 일단 무산됐다.

지질학계는 인류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확인되는 표본지(국제표준층서구역)를 찾으려고 15년간 공을 들인 뒤 표결에 들어갔다.

인류세 도입 논의를 주도한 인류세 워킹그룹(AWG)은 작년 7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 호수를 표본지로 선정했다.

크로퍼드 호수에는 플루토늄을 비롯해 1950년 이래 핵무기 실험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해당 연구진의 선택을 받았다.

지구의 45억년 역사는 가장 큰 단위인 누대(eon)부터 차례로 더 작은 단위인 대(era), 기(period), 세(epoch), 절(age)로 나뉜다.

공식적으로 현시점은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이다.

인류세가 도입되면 종료될 예정이던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지금까지 1만1천700년 정도 이어지고 있다.

소위원회 논의에서 지구에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인류세 도입은 성급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부는 1950년께가 아니라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후반 등을 인류세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핵실험 같은 단기적 사건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 서서히 이뤄지는 지질학적 사건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 인류세 논의는 인간 활동이 기후·자연생태계를 바꾸고 그 흔적이 지각에 선명하다는 점을 누구나 인식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 등의 제안으로 학계의 논쟁이 심화하고 그 개념은 대중에도 널리 알려졌다.

핵무기 사용을 시작점으로 한 인류세 논의는 중단됐으나 새로운 논의가 막히거나 용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방사성 물질뿐만 아니라 광물 대량채취,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증가, 플라스틱, 알루미늄, 콘크리트 등 격변이 즐비해서다.

나중에 외계인이 닭이 지배한 행성으로 볼 만큼 치킨 소비로 인한 닭 뼈가 지각에 많다는 점을 인류세 근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소위원회 표결에 참여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킴 코언은 지질시대가 규정되든 말든 인류세는 이미 대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인류세가 사람들 입에 붙었다"며 "학술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지질학계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