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에 의료공백 확산…"간호사 진료행위 회의적"

교수·의대생·전문의 집단행동 움직임…'강대강' 대치하나

(전국종합=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8일째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 공백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문의와 의대 교수, 의대생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이 '강대강' 대치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 장기화에 대비해 간호사들이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으나 내부 협의 등의 문제로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전공의 복귀 '감감'…병상·수술실 파행 운영

제주지역 6개 수련병원 전공의 150명 중 142명은 8일 오전 11시 현재까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복귀 전공의 90%가 몰려있는 제주대병원과 제주한라병원은 환자들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의료 공백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과 천안지역 대학병원 2곳의 미복귀 전공의는 570여명으로 추산된다. 대전성모병원과 순천향대병원의 1명씩을 제외하고는 추가 복귀자가 전무한 상태다.

상급병원인 충남대병원과 건양대병원은 중증·응급질환자를 중심으로 수술실 가동률을 20∼50% 줄였고, 을지대병원과 대전성모병원 또한 평소의 60∼70% 수준으로 수술과 응급의료를 축소했다.

인천지역 11개 수련병원 전체 전공의 540명 중 380명 또한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인천시는 전공의들이 떠난 길병원과 인하대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의 병상 가동률이 평소의 50∼60%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수술 역시 취소·연기가 이어지면서 이전의 40∼50%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강원지역 9개 수련병원 전공의 390명 중 사직서를 낸 360명 대다수도 복귀하지 않아 강원대병원, 강릉아산병원 등 주요 병원의 수술과 병상 가동률이 급감하는 등 진료 공백이 뚜렷한 모습이다.

부산에서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대형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환자들이 인근 중소병원으로 몰리면서 일부 병원의 병상이 과부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지역 한 의료계 관계자는 "중소병원의 중환자실도 더는 환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제 의료 현장은 아슬아슬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의대 신입생 증원 반대…교수·의대생까지 반발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원격으로 개최한 긴급총회에서 3개 수련병원(서울아산·울산대·강릉아산병원) 교수 254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방침에 대응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대위 관계자는 "울산의대 모든 교원은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며 "(사직서는) 각 병원 비대위에 자발적으로 제출하되 접수 방안과 일정은 추후 공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주대의대 교수협의회도 지난 4일 아주대가 의대 정원을 기존 40명에서 144명으로 늘려달라고 교육부에 요청하자 비대위를 꾸리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 교수는 이날 성명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젊은 의사들과 휴학을 결심한 학생들의 행동에 기성 의료인으로서 부끄러움과 지지의 마음을 함께 보낸다"며 "이제라도 해당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결과물로 만들기 위한 진지한 협업을 제안한다"고 요구했다.

경북대 의대 학장단 교수들 또한 성명을 발표하고 "대학 본부와 총장은 의대의 제안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입학정원 증원을 제시했다"며 "교육자로서 의학 교육의 파행을 더 묵과할 수 없기에 일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북대 의대 재학생과 교수 노조도 이에 동조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의대 정원을 기존 110명에서 25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홍원화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재학생들은 "학생과 교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정치적 (신입생) 증원 신청"이라며 "홍 총장은 경북대 학생과 구성원들에게 사죄하고 총장직을 내려놓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대 의대생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100여명도 이날 대학 본부 앞에서 묵언 시위를 예고하는 등 의대 증원에 적극적인 대학과 이에 반대하는 교수·의대생 사이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모습이다.

◇ 간호사도 진료행위 본격 투입…현장에선 '글쎄'

정부는 이날부터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이 지침은 간호사들이 사망 진단 등 대법원이 판례로 명시한 5가지 금지 행위와 엑스레이 촬영, 대리 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 9가지를 제외한 다양한 진료 행위를 의료기관장의 책임 아래 할 수 있게 한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일부 병원 노조는 간호사의 의사 업무 수행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고, 각 병원은 구성원의 반발을 뛰어넘어야 해 의료 현장에 지침이 적용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본부 측은 이번 보완 지침 시행에 대해 "이미 병원에서 암묵적으로 해온 일을 지침(법률)으로 분류한 셈이라,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수술실 간호사'라고 불리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이 관행적으로 의사 업무를 해와 문제가 없으나, 그 외 다른 간호사들은 의사 업무에 처음 투입되면서 숙련도 부족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무 중 의료 사고·과실로 인한 형사 책임을 면할 수는 있어도 민사 소송까지는 보호가 안 되는 문제가 있다고 노조 측은 지적했다.

노조는 또 이번 사태가 끝나도 계속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떠맡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의료 현장에는 "의사들 현안에 왜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까지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고 전했다.

대전 모 대학병원 교수도 "전공의들도 간단한 봉합 수술은 할 수 있지만 시키지 않는다. 환자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겠느냐"면서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으로 간호사도 할 수 있다고 정해놓은 항목을 수행하다가 의료사고가 났을 경우, 추후 사법부가 용인해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인 판단은 의료기관장에 위임해 정하라는 것인데 진료과별로, 의료기관마다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모두 다른 업무를 표준화할 수 있겠느냐"며 "게다가 시행령에 임상병리사와 응급구조사의 행위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해 놓는 등 직역 침범 사례도 있어 '무면허 행위' 위험도 엿보인다"고 역설했다.

(김솔 강태현 백나용 장지현 이성민 신민재 박주영 박성제 박정헌 박철홍 박세진 정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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