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관세를 제품 가격에 전가 시작
"묻지 마 구매는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다시 절약 소비에 나서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대형 유통점의 자체 브랜드 제품이나 꾸러미 포장으로 파는 제품의 판매는 늘고, 비싼 식당의 매출은 줄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미국인들이 다시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아 나서고 있다며 연방정부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소비지출이 정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멕시코 식당 체인 치폴레와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드갬블(P&G)의 경영진은 고객들이 더 쪼들리고 있거나 그렇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분기 전 세계적으로는 간식류 매출이 증가했지만 미국에선 큰 폭으로 감소했고, 소고기 가격은 사상 최고가 수준으로 치솟았다.
매일 카페 라테를 마시던 소비자들은 최대 50%의 커피 관세에 직면했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인 F-150 픽업트럭을 만드는 완성차업체 포드는 관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부 차량 가격을 올렸다.
기업 경영진은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과 고용 전망, 개인적 재정 상황 등에 대한 불안감으로 필수품에만 집중하고 여유분은 포기하면서 소비를 축소하고 있다고 한다고 WSJ은 전했다.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건축가 케빈 어빈 켈리는 저녁 식사에 150달러(약 20만원)는 쉽게 나가는 아내와의 데이트를 없앴고, 올여름 휴가 때는 하와이나 멕시코의 리조트 대신 처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켈리는 "묻지 마 구매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크로거를 찾는 고객들의 쇼핑 행태도 달라졌다. 고객들은 할인쿠폰을 오려서 가져오고, 술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품목은 구매를 줄이고 있다.
자체 브랜드 제품 판매가 늘었고, 고객 유치를 위한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고객 1인당 결제 액수는 줄었다.
상대적으로 고가 식당인 치폴레는 2분기 점포당 매출이 감소한 반면 '1+1' 등 판촉 행사를 벌인 도미노 피자에는 고객이 더 늘었다.
이달 말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키아라 카니우스키(31)는 힘든 작업 끝에 식료품부터 럭셔리 피부관리 용품까지 생활비를 60∼70% 정도 줄였다.
카니우스키는 "미국 경제는 커다란 수학 문제를 하나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게 더 비싸지고 있는데 임금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가운데 그동안 기업들이 미뤄왔던 관세에 따른 비용 상승을 제품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2일 보도했다.
관세 전쟁 초기엔 많은 기업이 그 비용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길 선택했지만 수익성이 점점 악화하자 가격을 유지할 방법이 동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나온 미 상무부 자료 등을 보면 지난 6월 가구와 장난감, 가전제품 등 관세의 타격을 많이 받는 품목들의 가격이 상승했다.
또 아디다스와 프록터앤드갬블(P&G), 스탠리 블랙앤드데커 등은 관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나 장난감 기업 해즈브로·마텔도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 상황이다.
NYT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들이 관세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닥칠 수개월간 관세가 가격에 더 두드러진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