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말 경주 APEC 트럼프 대통령 방한 가능성…협상 문서화 '모멘텀'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가 대미 투자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난항을 겪으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일본과 합의한 방식을 한국에도 강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은 국익 관점에서 합리적인 협상을 추구한다는 기조를 꺾지 않고 있어 이견을 좁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17일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미 통상 당국은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현재까지 협상의 세부 이행사항을 확정하고 문서화하기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한미는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천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협상안에 합의했다.

한미 통상 당국은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위해 지난 8일 워싱턴 DC에서 실무협의를 갖고, 지난 12일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뉴욕을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면담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장관 귀국 바로 다음 날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시 워싱턴 DC로 떠나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담하는 등 고위급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먼저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며 일본차에 대한 품목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조치가 시행되자 국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과 일본의 대미 최대 수출품인 자동차에 매겨지는 관세가 한국은 25%로 유지되는 가운데 일본차는 관세가 15%로 낮아지면서 한국차의 가격경쟁력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리며 관세 소나기를 피하려 하지만,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등으로 배터리 등 대응도 늦어지는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관세 협상에서 5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실무협의를 통해 대미 투자 결정 주도권을 미국이 행사하고, 투자 이익의 90%(투자금 회수 전에는 50%)를 미국에 넘기는 조건에 합의하는 내용의 MOU에 사인했다.

협상 이익이 지나치게 미국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일본 내에서도 나오는 것과 동시에 5천500억달러를 당장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관세는 바로 25%에서 15%로 낮아져 미국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만큼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미 투자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에도 일본과 같은 방식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3천500억달러를 주는 대신 차라리 25%의 관세를 물자'는 주장까지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국익 관점에서 미국의 지나친 요구는 받기 어렵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5일 관세 협상 마무리가 늦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무리한 요구가 있다면 '국익의 보전'을 (목표로) 놓고 협상해 나가겠다는 원칙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한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난항을 겪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협상 과정에 있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협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은 사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3천500억달러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투자하면 외환시장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측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하는 등 협상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도 "협상이 밀고 당기는 과정에 있다"며 "(협상장에서) 저도 책상도 치고 목소리도 높이고 하는 그런 과정에 있다. 양측이 '윈-윈'하기 위해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합의문에 성급하게 서명하기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협상을 마무리할 것을 주문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기까지 조금 더 오래 교착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 길면 두세 달 정도 서로 협의하면서 접점을 찾아나갈 것 같다"며 "조선, 원자력, 반도체 등 한국이 강점이 있고 미국은 잘 못하는 분야의 협력 방안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국민 경제 전체에 미치는 모든 영향을 고려해 협상해야 한다"며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마스가 등 카드로 재량권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 주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한미 간 협의가 급진전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미 통화 스와프, 한국기업에 대한 미국 비자 문제 등이 모두 정리되기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는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APEC을 계기로 한미 관세 협정 문서화 작업이 마무리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