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H-1B'발급비 1000불→10만불 인상 행정명령...외국 인재들 "아메리칸 드림 사망 선고"

[뉴스포커스]

글로벌 인재 채용 美 IT 기업들 대혼란
80%이상 印·中…한국 한해 2000명선
한미간 비자 협상에도 돌발 변수 작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고급 기술 인력에게 주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 발급 수수료를 현 1000달러에서 100배나 인상한 10만 달러로 높이면서 미국 기업과 외국인 직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제공하는 H-1B 프로그램은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고 영주권 전환도 가능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공학 분야 인재들이 주로 찾는 비자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종언을 고한 것이다. 비자 장벽이 극도로 높아진 만큼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수수료 규정은 9월 21일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전문 직종에 적용되는 비자로, 추첨을 통한 연간 발급 건수가 8만5천건으로 제한돼 있다. 기본 3년 체류가 허용되며, 연장도 가능하고,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다. 이 비자는 구글, 아마존, 테슬라를 비롯한 미 빅테크 기업의 초격차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제도로 평가된다. 이 비자는 인도·중국인이 전체의 80%기 남을 정도로 발급 비중이 높다. 한국인은 1년에 2000명 안팎이 H-1B 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하지만 비자 발급 수수료가 한번에 100배나 인상되면서 개인이 이를 부담하거나 미국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인재를 데려오기가 힘들어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진영 강경파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불만에 결국 전문직 취업 비자에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당장 외국인 전문가들을 대거 고용한 미국의 테크기업들에는 이번 조치로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JP모건 등은 해외에 체류 중인 H-1B 비자 소지 직원들에게 즉시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그러나 미국내서 비판이 거세지자 행정명령 다음날 백악관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연간 수수료가 아니다. (신규 비자 발급) 신청 시에만 적용되는 일회성 수수료”라며 “H-1B 신규 비자에만 적용되며 비자 갱신 때나 현재 비자 소지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트럼프 정부는 IT 기업 등 미국 업체들이 H-1B 비자를 이용해 저임금으로 외국 인력을 들여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에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는 1만 개 이상의 H-1B 비자가 발급됐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각각 5000개 이상의 H-1B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러나 H-1B 비자는 미국이 전 세계 최고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 이번 수수료 인상은 한국인 구금 사태를 계기로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간 비자 협상에도 상당한 돌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한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별도 비자 말고도 기존 H-1B 비자 내에서 한국인 쿼터를 늘리는 방안도 옵션의 하나로 고려했는데, 트럼프의 이번 조치로 전략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주환 기자 <관계기사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