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언어 폭력에 감정 숨겨…우울증 등으로 발전
충분한 휴식이 최저 방어선…더 벌기 위해 휴식없어
한인 감정노동자에 대한 연구와 사업주 각성이 필요

 #"야 사장 바꿔! 아이 XX 확!" 아침부터 술에 취한 50대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욕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고객님" "이게 욕이냐? 이XX 이걸 제품이라고 나한테 팔았냐?" LA한인타운 내 판촉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한모(여·45)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판촉전화를 걸 때마다 고객들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런거 필요없다니까 왜 계속 전화를 해대냐고!" 소리지르며 전화를 끊는다. 한씨는 자신의 목소리가 스팸전화로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가장 힘들다.

 #"ID를 보여 달라고요? 내가 술 살 나이로 안보여요? 눈이 있으면 제대로 보고 말해요." 타운 내 한인마켓에서 10여년 째 캐시어로 일하고 있는 김모(여·56)씨는 자식뻘같은 나이 어린 손님들에게 모욕을 당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게다가 산 물건을 카트 채 그대로 취소하고 가버릴 땐 매니저의 잔소리까지 참아내야 한다. 김씨는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하루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식욕도 없어진다고 한다. 그는 요즘 우울증 치료를 받기 위해 이직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위 두 사례의 한씨와 김씨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지만 그들에겐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감정이다.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생계 수단이 끊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위 '감정노동자'들이다.

 소비자를 응대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감정노동자들이 LA한인사회 곳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지만 무관심으로 방치되어 이에 대한 관심과 대안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2015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텔레마케터(소비자센터)가 가장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어 호텔 관리자, 네일아티스트, 항공권발권 사무원, 마켓 판매원 등으로 감정 노동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 꼽혔다. 그나마 한국은 지난 3월15일 감정노동자들이 손님에게 폭언·폭행을 당해 우울증이 생기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시행령이 통과해 정신적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비해 LA한인사회에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조사 활동이나 자료가 전혀 없어 현황 조차 파악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인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흔한 피해는 언어 폭력이다. 대형정수기대여업체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박모씨는 "막무가내로 우기는 손님한테 반말이나 욕설까지 듣다 보면 이렇게 까지 일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괴감마저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인가정상담소의 폴 윤 카운셀러는 "한인사회의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연구 자료는 전무한 실정"이라며 "다만 밀집된 상권에서 많은 한인들이 감정노동자로 일하고 고통받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폴 윤 카운셀러에 따르면 업주가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만으로도 감정노동자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즉 감정노동자가 법에 규정된대로 충분한 휴식을 갖는 것으로 우울증이나 기타 마음의 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1차적 최저 방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정신관련 전문가들은 "업주는 친절 서비스 경쟁의 명목으로 악성 고객의 문제행동을 눈감아 주고 있다"며 "업주가 손님 대응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감정노동자들을 부당한 소비자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