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액에 든 '무친 단백질', 바이러스 유인해 ACE2 결합 차단

침방울 다 마르면 '접촉 전파' 가능성 작아져

미국 유타대 연구진, 저널 'ACS 중심 과학'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초기엔 가구나 사무기기 같은 물체의 표면을 잘 소독해야 하는 거로 알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체 표면을 통해 접촉 감염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데믹 초기에 나온 일부 연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물체의 표면에서 길면 수 주까지 살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독용 물티슈가 한때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사람들은 물체의 표면을 닦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2020년 말이 돼서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주 감염 경로가 공기 중의 미세한 콧물 방울(nasal droplet)이나 침방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표면 소독에 대한 관심은 많이 식었다.

하지만 지금도 코로나 방역 가이드라인엔 꼼꼼한 비누 손 씻기가 포함돼 있다.

물론 손 씻기를 잘하는 건 개인위생의 기본이고 각종 전염병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표면 접촉으로 전염되기 어려운 이유가 뒤늦게 밝혀졌다.

뜻밖에도 핵심 역할을 하는 건 코 점액이나 타액에 들어 있는 특정 단백질이었다.

미국 유타대의 제시카 크레이머 생물의학 조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화학학회가 발행하는 저널 'ACS 중심 과학'(ACS Central Science)에 논문으로 실렸다.

10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코 점액이나 타액(침방울)에 섞여 물체 표면에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액이나 타액이 다 마르면 신종 코로나가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점액이나 침방울에 들어 있는 '무친(mucin)'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는 역할을 했다.

사람마다 유전자, 섭취 음식,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생성되는 무친 단백질 유형이 다르다고 한다.

연구팀이 확인한 사실은, 특정 유형의 무친 단백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를 둘러싸서 전염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두 가지 전염 모델에 실험했다.

하나는 신체 만지기, 재채기 등의 직접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표면을 만지는 간접 접촉이다.

점액이나 타액에 무친 단백질이 없으면 어느 쪽 모델이든지 표면에 남아 있던 신종 코로나가 쉽게 전염됐다.

그러나 무친이 있으면 표면에 떨어진 점액과 침이 마르자마자 전염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점액이나 침방울이 말라붙어 바이러스의 전염이 차단되는 덴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친이 이런 기능을 하는 건 글리칸(glycan·다당류)이 달라붙는 특별한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감염할 땐 숙주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ACE2 수용체의 글리칸 부분과 결합한다.

그런데 무친 단백질은 신종 코로나가 숙주세포에 도달하기 전에 낚아채는 미끼 역할을 했다.

연구팀은 점액이나 타액에 무친 단백질이 없을 때 플라스틱, 유리, 금속, 수술용 마스크 등에 있던 신종 코로나가 일상적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는 걸 확인했다.

실제로 이 단백질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코로나는 플라스틱 표면에서 며칠간 자연 건조된 뒤에도 전염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무친 단백질이 있으면 얘기가 달라졌다. 5분이든 사흘이든 점액 등이 마르는 과정을 거치면 바이러스는 전염력을 상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물체의 표면에서 수일 내지 수 주간 생존한다고 보고한 이전의 연구는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바이러스의 매개체로 인간의 코 점액이나 타액이 아닌 물을 사용해 무친 단백질의 이런 작용을 놓쳤다는 의미다.

크레이머 교수는 "무친 단백질이 신종 코로나 전염을 차단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이 작용을 모방하는 신약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che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