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가상화폐조직 '헤리티지 DAO'에 판매"…구매 신고자는 싱가포르 업체

매매·지분기부 경위 의문, NFT사업 요구설도…"문화재 지분 나누기 금시초문"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박상현 기자 = 간송 전형필 후손이 경매에 출품했다가 유찰된 뒤 최근 새 주인을 찾은 국보 '금동삼존불감'의 기묘하고도 독특한 매매 과정을 두고 문화계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상 첫 국보 경매 매물이었던 불감을 매입한 주체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새 주인이 대체불가토큰(NFT) 사업권을 얻는 대가로 유물 소유권 일부를 다시 간송 측에 주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16일 낸 입장문에서 "글로벌 문화 애호가들의 블록체인 커뮤니티인 '헤리티지 DAO'가 케이옥션을 통해 불감을 구매했다"며 "헤리티지 DAO는 불감을 재단에 영구 기탁하고, 소유권의 51% 지분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보 문화재가 가상화폐 관련 조직에 팔린 것은 처음이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이 국보로 지정된 불감과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을 지난 1월 경매에 내놓았을 당시 '국보 DAO'가 자금 조달에 나섰으나,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해 응찰하지 않았다. DAO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공동 투자 조합으로, '탈중앙화 자율조직'을 뜻한다.

하지만 문화재청 누리집에는 국보 불감의 새로운 주인이 '헤리티지 DAO'가 아닌 '볼***'로 표시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소유자는 자연인 혹은 법인이어야 해서 싱가포르 업체인 '볼***'을 내세운 듯하다"며 "경매를 주선한 케이옥션 측에서 거래가 완료됐다는 서류를 작성했고, 이 업체의 대리인 변호사가 서울 성북구에 소유자 변경 신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유자 변경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며, 간송재단을 불감의 관리자로 지정하겠다고 해서 특별히 해당 업체를 조사하지는 않았다"며 "이 업체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지만, 가상화폐와 관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헤리티지 DAO는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금융업체 '크레용'(Crayon)과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다. 크레용은 NFT 공동구매와 거래, 판매 등에 주력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이 업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헤리티지 DAO가 크레용의 하위 DAO이며, 한국 국보를 사들이기 위해 첫 DAO를 추진한다는 글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HDAO'로 명명됐다.

헤리티지 DAO의 자금 조달 방법과 주도자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감 소유권의 51%를 기부한다는 표현이 생경하고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의 지분을 주식처럼 나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무척 당황스럽다"며 "지분 51%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이 문화재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예는 있지만, 재단이나 단체 사이의 공동 소유는 거의 없다. 이번 거래의 내막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국보 불감 매매의 또 다른 관심사인 판매액도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케이옥션은 1월 경매에서 불감 시작가를 28억원으로 책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0년 경매에서 유찰된 간송 후손 소유의 보물 불상을 시작가보다 약간 저렴한 금액에 매입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28억원보다 다소 낮은 액수에 거래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헤리티지 DAO는 문화재 실물보다는 NFT 사업권에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간송 후손이나 간송재단에 소유권을 일부 혹은 전부 넘기는 조건으로 유리한 사업 계획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이와 관련해 간송재단은 지난해 테크미디어기업 퍼블리시와 함께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상으로 한 NFT를 100개 한정판으로 제작했다. NFT 가격은 개당 1억원이었다.

퍼블리시 관계자는 "훈민정음 NFT는 70∼80% 정도 판매됐다"며 "NFT 구매자에게는 훈민정음 영인본(복제본)을 주고, 간송재단에서 멤버십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계에서는 경매에 함께 나왔던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의 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도, 헤리티지 DAO가 굳이 불감을 산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다. 계미명불상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삼국시대 불상이다.

퍼블리시 관계자는 "NFT로 만드는 유물이 유명할수록 사업성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기획하느냐가 더 중요한 듯하다"고 전했다.

문화계에서는 이 같은 국보 불감 거래와 지분 기부, NFT 사업 추진설 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간송재단은 헤리티지 DAO가 불감을 사들인 뒤 재단에 영구 기탁하고 지분까지 기부한 것을 두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라고 밝혔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미술사학을 연구하는 학계 관계자는 "국보 불감과 불상이 경매에서 판매되지 않으니 간송 측이 일종의 쇼를 하는 것 같다"며 "문화재 기증 절차는 투명해야 하고, 기증자를 떳떳하게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보의 경매 출품에서 비롯된 일련의 과정이 여러모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