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실태 조명…새 고객 몰리고 원산지 둔갑까지

러 할인가 판촉…"싸게 팔려도 전비 대고도 남을 것"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에너지 제재가 현재로선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석유 장사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으로 돌아갔다며 29일 이같이 분석했다.

민간 국제금융기관 연합체인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러시아가 올해 1∼7월 올린 석유, 천연가스 매출은 970억 달러(약 130조원)다.

그 가운데 740억 달러(약 100조원)는 석유에서 나왔다.

엘리나 리바코바 IIF 차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에 현금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가 올해 7월 원유, 석유제품을 하루 740만 배럴씩 수출했다고 집계했다.

이는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제재에도 작년 말보다 겨우 60만 배럴 정도 줄어든 규모다.

수출량은 줄었지만 월평균 매출액은 고유가 때문에 작년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서방은 올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을 물어 러시아의 주요 자금줄인 원유수출에 제재를 가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경제를 때려 응징한다는 보복과 함께 전쟁비용 충당을 막아 종전을 앞당긴다는 전략도 반영됐다.

서방의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은 일부 비서방 국가의 수입 확대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인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더 많이 사들여 새 판로를 열었다.

특히 인도는 거의 손도 안 대던 러시아산 석유의 수입을 정부 방침에 따라 하루 100만 배럴까지 늘렸다.

인도 국영업체인 '인디언 오일'은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와 2028년까지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원유를 가볍게 가공한 연료를 주로 사들이고 있다.

이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 화력발전소에 쓰이거나 UAE 푸자이라 수출항에서 원산지가 바뀌어 다른 나라에 재판매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산 석유를 쓰기보다 할인가에 사들여 시장가에 파는 걸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정부는 불투명한 거래에 힘을 보태려고 매달 해오던 석유생산 자료의 발표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러시아항을 떠나는 석유의 목적지가 기재되지 않는 경우도 잦다는 목격담도 나온다.

WSJ은 이런 교역 때문에 대러시아 제재의 효과가 떨어지지만 유가상승을 억제해 서방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석유업체 PJSC의 전직 임원인 에브게니 그리보프는 "러시아 석유가 다른 시장을 찾을 것"이라며 "할인돼 팔려도 전비를 대고도 남는다"고 진단했다.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