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군이 접전 끝에 수복에 성공한 북부 전략 요충지 도네츠크 리만에서 전쟁의 처참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가디언은 수개월간 이어진 러시아군의 점령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리만에 들어가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의 모습을 전했다.

리만의 거리는 포탄에 맞아 파괴된 건물 잔해와 미사일 파편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도로는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 지속된 폭격 등으로 성한 곳이 없었고 지붕에는 떨어져 나온 금속 판자 등이 바람에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BBC는 리만에는 전쟁 전에는 2만7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아 거리에서 보인 주민은 떠돌이 개보다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누군가의 남편이었거나 아들이었을 러시아 병사들의 시신이 길거리나 숲속에 아무렇지 않게 방치됐다.

사람들이 시신을 수거해 치우고 있지만 아직도 남은 러시아군 병사들의 시신이 적지 않았다고 BBC는 전했다.

마을 곳곳에선 러시아군이 철수하며 버리고 간 군복과 장비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고 블에 검게 그을린 장갑차와 탱크 등은 메케한 냄새를 풍기며 방치돼 있었다.

러시아군 검문소가 있던 도로변의 한 참호에선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러시아군이 남기고 간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였다.

참호 안 벽면에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쓰는 상징물이 달려 있었다.

이 참호에 의탁해 신에게 기도하고 전쟁과 평화를 읽었던 러시아 병사는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군에 잡혀 전쟁 포로가 됐거나 혼비백산 달아나다 포격에 맞아 숨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도 살길을 찾아 달아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수개월간 러시아군의 점령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야 했던 리만 주민들은 부서진 집에서 맞아야 할 겨울에 좌절하고 있다.

가디언은 리만의 한 아파트 앞마당에서 화덕에 요리 중인 올레나 그리고리우나(69)를 만났다. 그녀는 남편이 가져온 폐목재로 지핀 불에 의지해 스파게티를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리우나는 "겨울이 다가오는데 가스도 없고 집에는 창문도 없다.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들 부부와 같은 고령자들은 전쟁이 터져도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온 구호품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거리엔 이제 막 돌아온 주민들이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빅토르 세르히요우이치(75)는 가디언에 "빵을 얻으러 나왔지만 어디에도 없다"라며 "예전에 근처에 큰 빵집이 있었는데 전쟁통에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한 주택가 뒷골목에선 우크라이나군 구급차가 잔해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차량이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앞뒤로 흔들릴 때 의무병 한 명이 내리고선 뒷문을 열어 차 안에 실린 부상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구급차는 길이 정리되자 다시 분주히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가디언 기자는 이 장면을 전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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