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 받은 뒤 치료 끊어…증세 악화한 듯

경찰 "'신림역 사건' 모방 범죄로 보기는 어려우나 일종의 계획범"

사건 사흘 전 범행 결심…10일 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 예정

(성남=연합뉴스) 강영훈 권준우 기자 =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은 '자신을 감시하는 스토커 집단이 있다'는 망상에 빠져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최원종의 진술 및 휴대전화 등 포렌식 결과 그가 이 사건에 앞서 지난달 발생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을 모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미리 흉기를 구매한 점 등에 미뤄 사전에 범행을 준비한 일종의 '계획범'으로 결론 내렸다.

◇ 1명 사망·13명 부상…수사 결과로 본 사건의 재구성

경기남부경찰청 흉기 난동 사건 수사전담팀은 9일 오후 2시 분당경찰서 2층 회의실에서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최원종을 살인 및 살인미수, 살인예비 혐의로 10일 검찰에 구속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원종은 지난 3일 오후 5시 35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집에서 모친 명의의 모닝 차량을 끌고 나와 수인분당선 서현역과 연결된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앞으로 갔다.

최원종은 범행 현장 주변을 맴돌다가 범행을 결심한 뒤 오후 5시 56분 차를 몰고 보행자 5명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그는 오후 5시 57분 흉기를 들고 차에서 내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해당 백화점은 2층과 외부 지상이 연결된 구조이다.

최원종은 오후 5시 58분부터 백화점 안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로 인해 9명의 시민이 다쳤다.

최원종은 오후 5시 59분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백화점 밖으로 나갔다.

돌연 범행을 멈춘 이유에 대해 최원종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는 이때부터 관련 신고가 잇달아 접수됐다.

최원종은 백화점에서 나와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부근으로 걸어가다가 경찰관에 의해 오후 6시 5분 체포됐다. 최초 신고 접수 6분 만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최원종이 실제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운 시간은 2분가량인 것으로 파악했다.

◇ 신림역 사건 모방?…사전에 범행 계획?

경찰은 최원종이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을 벌인 조선(33)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해당 사건 모방 범죄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최원종의 휴대전화 및 PC 포렌식을 통해 로그 기록 등을 폭넓게 조사한 결과 신림역 사건 관련 검색·방문 횟수가 유의미하다고 볼 정도로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원종 역시 "(신림역 사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다만 최원종이 신림역 사건 발생 닷새 뒤인 지난달 26일 온라인을 통해 흉기를 산 점 등에 미뤄볼 때 조선의 범행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이 흉기는 최원종이 지난달 29일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밖에 나갈 때 30㎝ 회칼 들고 다니는 23살 고졸 배달원"이라고 쓴 글에 첨부된 사진 속 흉기이다. 범행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이 내려졌으나, 최근 3년간 병원 진료를 받지 않았던 최원종이 망상에 빠져 범행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원종은 "나를 해하려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는 검거 당시의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

최원종은 커뮤니티에 흉기를 든 사진 등 게시물을 올린 것 역시 스토킹 집단이 커뮤니티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고 한다.

또 서현역을 범행 장소로 삼은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의 집 주변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어서 스토킹 집단 소속인 이들이 다수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아울러 경찰은 최원종이 "사건 사흘 전 범행을 결심했다"는 진술에 따라 지난달 31일 일을 저지르려고 마음먹은 것으로 봤다.

최원종은 이튿날인 지난 1일 혼자 살던 집에서 나와 인근에 있는 본가로 돌아와 합가했다.

이어 2일에는 대형 마트에서 흉기 2점을 사서 스쿠터를 타고 야탑역으로 간 뒤 지하철을 타고 서현역으로 이동하는 등 서현역 주변을 서성댔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원종은 원래 이날 범행을 저지르려고 했으나, 실제 범행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최원종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찰은 최원종의 범행이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도, 일부 사전 계획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 프로그래머 꿈꾸던 청년…홀로 살며 증세 악화 추정

2001년생인 최원종은 대인기피증이 심해 중학생이던 2015년부터 모 병원 정신과에서 진료받기 시작했다.

최원종의 가족들은 그가 프로그래머를 꿈꿨으며, 이를 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최원종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2017년 증세가 악화하면서 새로운 학교생활에 잘 응하지 못하고 대인 관계 역시 원만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고교 진학 1년도 되지 않아 학교를 자퇴했다.

최원종은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2020년에 앞서 5년여간 받아 왔던 정신과 치료를 중단했다.

최원종은 이와 관련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어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차도가 없다 보니 (스스로 판단해) 병원을 끊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고졸 검정고시를 치른 뒤 같은 해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의 집에서 나와 범행 직전까지 혼자 살아온 최원종이 사회적으로 고립이 심해지면서 증세도 악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최원종은 자신이 곧 (스토킹 집단으로부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피해망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차량에 받힌 보행자 5명 중 6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이 외에 20대 여성 1명은 현재 뇌사 상태이고, 다른 3명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흉기에 찔린 시민 9명도 모두 중상이다. 부상자 중 2명은 위중한 상태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건 직후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분당경찰서장을 팀장으로 하는 총 63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수사를 벌여 지난 5일 최원종을 구속했다.

이어 범행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이 인정된다며 지난 7일 최원종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k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