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봉쇄·공습·지상전에 인도적 위기 악화일로

빵 사려고 몇시간 줄 서야…"병원에 의약품·전기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맞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한 채 보복 공습, 지상군 투입 등으로 공격 강도를 높이면서 가자지구가 절망적인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다.

식량이 거의 바닥나면서 굶주림이 커지고 있고 피부병과 머릿니 등 질병까지 확산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이 임박했다고 경고한 가자지구 보건 재앙마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같은 달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받고 전면 봉쇄한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빵과 다른 필수 식품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설 정도로 굶주림이 확산하고 있다.

가자지구 빵집들은 밀가루와 오븐용 연료의 부족 때문에 문을 닫고 있다. 수백명이 빵을 사기 위해 몇시간씩 줄을 서고 있다. 상점에 남아 있는 건조 제품이나 채소 등 식품 가격은 많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공무원 마리 압둘 카림(43)은 "나중을 대비하고 아이들을 위해 아끼기 위해 조금씩 먹는다"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지구의 필수 식량 공급이 7일만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지난달 30일 추산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에 소량의 인도적 구호품을 반입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하마스의 군사적 전용을 우려해 연료 공급은 막고 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이런 구호 상황에 대해 "엄청난 규모의 수요에 비하면 바다에서 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이라며 "가자지구의 현재 상황은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미미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자지구는 대부분의 식량을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존해왔다.

이번 전쟁 이전에 가자지구 주민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했다. 하마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다음 해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에 나선 결과였다.

안 그래도 힘든 생활고가 전쟁으로 더 심해지며 굶주림으로 내몰린 것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지난달 7일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필요한 식량 가운데 약 2%만 공급된 것으로 추정했다.

주민 모하마드 자파르는 빵을 사기 위해 거의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최대 6시간 줄을 선다며 "가자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 더해 각종 질병도 퍼지고 있다.

중동 매체 '중동모니터'에 따르면 많은 가자지구 주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들로 대피하면서 이들 학교의 과밀 현상이 빚어져 질병이 번지고 있다.

가자지구 루세이라트 난민캠프의 학교에 거의 1만5천명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다는 하닌이란 여성은 "피부병과 머릿니가 퍼지기 시작했다"며 "중병에 걸린 어머니와 아이들이 있는데 치료할 약이 없고 모든 것(병)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UNRWA는 하루에 (1인당) 빵 한 덩어리와 참치 한 캔만 제공한다"며 "음식, 우유, 생리대 부족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 내 병원들도 심각한 상황이다.

푸트나 칼리파 팔레스타인 여성노동개발협회 코디네이터는 "최소 11개 병원은 의약품, 전기, 연료가 없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의 한 아버지는 이번 전쟁 중에 낳은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기 공급이 완전히 끊기면 아기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여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주요 2개 병원의 발전기가 몇시간 뒤면 완전히 멈춰 설 것이라며 "산유국의 모든 형제가 긴급히 개입해 환자와 부상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연료가 알시파 병원과 인도네시아계 병원에 공급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크리스티안 린드마이어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자지구에서는 대량 이주에 따른 과밀화, 식수 부족 및 각종 인프라 손상으로 공중보건 재앙이 임박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린드마이어 대변인은 "가자지구 주민들 가운데에서는 포격 등 공습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보건 문제로 사망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견에 함께 참석한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대변인은 "가자지구의 물 생산량이 정상적인 수준의 5%에 불과한 상태"라며 "탈수로 인한 어린이 사망, 특히 영아 사망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어린이들이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한 채 소금물을 마셔 병에 걸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kms1234@yna.co.kr